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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TF초점] 법정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피의자 신분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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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재판에서 '증언거부권'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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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법정'에 선 한인섭 원장…"피의자 증인도 변호인 조력 받아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혐의 중 자녀 입시비리 혐의의 증인이다. 정 교수는 고교생이던 딸에게 '허위 스펙'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학술 세미나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다는 허위 확인서를 받아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사용한 혐의(업무방해·위계공무집행방해)를 받는다. 한 원장은 재판 출석을 하루 앞둔 지난 5월12일 "재판하는 날 기관장들과의 회의가 잡혔고, 해당 사건은 10년 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는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정 교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사유가 부적절하다며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고 다시 소환했다. 이후 한 원장은 지난 2일 정 교수의 21차 공판에 출석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던 한 원장은 법정에서도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로 법학자는 왜 자신의 권리를 호소한 것일까.

◆증언거부권 행사의 대가는 과태료 500만원?

한 원장은 앞서 자신의 변호인이 동석한 상태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신뢰관계자가 동석하도록 법이 정하는 신체·장애인이나 13세 미만의 아동, 현저한 불안과 긴장이 우려되는 상태가 아니다"라며 반려했다. 하지만 한 원장은 증인 선서를 한 뒤 재판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 4분간 반려된 의견서 내용을 소명했다.

한 원장은 먼저 "검찰은 저를 처음엔 참고인으로 불렀다가 다음엔 피의자로 전환했다. 저는 구성요건, 증거관계, 공소시효 어느 점을 봐도 피의자가 될 이유가 없어 항의하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어쨌든 저는 현재 피의자"라며 "당연히 형사소송법상 증언거부권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저에 대한 기소 여부는 전적으로 검사의 재량 영역이다. 참고인, 피의자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제 법정 증언도 기소든 불기소든 판단 자료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며 "본 법정에서 검사가 할 질문은 전부 피의자·참고인 조사 때 나온 질문의 범위일 거라 생각한다. 법정이 검찰 조사실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잠시 휴정한 뒤 한 원장의 검찰 진술 조서를 정 교수 변호인단이 모두 동의하는 걸 보고 증인 채택결정을 철회했다. 한 원장은 법정에 온 지 40여분 만에 퇴장했다. 과태료 부과 결정 이의제기 기한을 넘긴 그는 이날 법정에 출석했지만 '법적 절차상' 500만 원 납부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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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재판에서 '증언거부권'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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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증언을 거부하는 법

대부분의 증인은 법정에서 어쩌면 피고인보다 수동적인 존재다. 검찰과 변호인이 묻는 질문에만 답을 해야하며, 배경을 설명하면 '묻는 질문에만 답하라'는 제지를 받기도 한다. 스스로 발언하려면 "재판장님,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라고 허락을 구해야 한다. 한 원장은 이날 재판에서 약 4분간 자신의 증언거부 사유를 피력했다. 자신의 양옆을 둘러싼 대부분이 그의 서울대 후배, 제자였다. 여러모로 생소한 풍경이다.

한 원장이 언급한 진술거부권과 증언거부권은 말 그대로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각각 진술과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권리다.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와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부여한다.

증언거부권이란 법정의 증인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무조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당 권리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148조를 보면 △자신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자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이 기소되거나 형사처벌받을 위험이 있는 증언은 거부할 수 있다. 공무원인 경우 공무상비밀에 관해, 특정 직업군은 업무상비밀에 관해서도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이 허락해야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같은 법률 "제146조 증인의 자격, 법원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는 조항에 비하면 법정에서 증인의 처지만큼이나 증언거부권을 규정한 조항도 '수동적'이다. 법원은 사건 당사자에게 이같은 권리를 고지하고 선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같은 절차 없이도 증인이 위증을 했다면 위증죄로 처벌해야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전 남편의 재판에서 "제가 운전했다"고 증언한 40대 여성이었다. 다만 판결문에 따르면 이 여성은 증언거부권을 고지받고 선서를 했더라도 거짓 증언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길 원하는 증인은 대부분 자신이나 가까운 사이의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을까 염려한다. 일각에서는 국내 재판 특성상 법원이 증언거부권을 허락해도 법정 문턱을 넘는 순간 사실상 권리가 무력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 또는 변호인, 재판부가 묻는 질문마다 "저 또는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공소제기, 형사처벌을 받을 염려가 있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대답하기도 곤욕스럽다는 설명이다. 신문이 길어지고 증인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는 상황도 재판에서 그다지 드문 광경이 아니라는 점 역시 증언거부권 행사의 장애물 중 하나다.

증언 거부에 '성공'해도 재판부의 심증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언거부권과 진술거부권 모두 행사하면 마치 유죄 심증처럼,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진술 또는 증언을 피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법정 문화와 검찰 수사 문화가 있다"며 "원론적으로는 법원에서의 증언거부권 행사가 보장돼 있지만 어떤 질문에 증인이 증언을 거부하면 과연 우리 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라 증언거부권을 행사 중이구나'라고 생각하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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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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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참고인→피의자→피고인' 피의자 증인의 공포

하지만 진술 거부가 예상되는 사람을 덮어놓고 증인으로 신청, 채택하지도 않는게 능사는 아니다. 법원의 존재 이유는 국가형벌권 행사와 더불어 실체적 진실 입증이다. 또 검찰 조사실과 달리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의 다각도적 시각의 신문이 진행된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조사나 신문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법정 증언은 절대 신빙성을 갖는다.

문제는 이 법정 증언의 절대 신빙성은 어떤 증인에게는 유난히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한 원장과 같은 피의자 신분의 증인, '피의자 증인'이다. 피의자들이 공범, 또는 관련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하는 건 흔한 일이다. 법원으로서는 유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의 범행과 관련이 밀접한 피의자를 반드시 불러 신문해야 한다. 반대로 피의자는 법정 증언의 절대적 신빙성에 자신도 언제고 증인석 옆 피고인석에 앉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중된다.

한인섭 원장 사례는 피의자 신분 증인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한 원장 측의 의견서와 법정에서의 소명을 종합하면 자신에 대한 공소제기 우려를 안은 피의자는 증인 선서문의 핵심인 '양심'보다 '불안감'을 의식한 증언을 하게 된다.

"피의자 증인은 통상의 증인보다 훨씬 취약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참고인을 손쉽게 피의자로 전환하듯이, 손쉽게 피고인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검사의 심기를 거스르면 기소 위협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심리적 위축 상태에서 증언한다고 하면 양심에 따른 임의성 있는 증언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피의자인지 아닌지 묻는 질문에 끝내 함구한 증인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하면 객관적 사실도 대답을 못하겠습니까. 148조의 증언거부권을 아주 눈치보면서 불안하게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권리 행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정 관행이 생기길 바랍니다."

한 원장의 법률 대리인인 양홍석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거부권 행사를 위한 방안으로 '피의자 증인 변호인 조력권'을 주장한다. 검찰 조사실에 변호인이 배석하는 것처럼, 피의자 증인의 법정 증언 때에도 마땅히 변호인이 조력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한 판결문에 따르면, 변호사와 함께 검찰 조사실에 들어간 피의자도 검사가 조사 전부터 변호인의 필기를 제한하자 불안에 떨었다. 이 판결문을 쓴 재판부는 피의자가 '특신상태'(신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나온 진술했다고 판단해 조서의 증거 능력을 낮게 평가했다. 피의자 증인은 법정에 변호사와 함께 들어가기도 어렵다. 반면 법정에서 나온 진술은 검찰 조사보다 절대적 증거능력을 지닌다.

양 변호사는 "피의자 증인이 하는 증언은 가장 열악한 상태서 나오는 증언"이라며 "법관 면전의 진술이라 신빙성은 굉장히 높은 만큼, 자칫 잘못하면 그 증언이 자신을 후벼 파는 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같은 측면에서 방어의 필요성이 더 절실히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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