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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통역’의 세계…구기환씨가 말하는 KIA 윌리엄스 감독 “감독님과 계단뛰기, 억지로 한다 오해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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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돕고 한국 생활 지원 등 ‘24시간 밀착 수행’

“감독님의 철저한 자기 관리·말솜씨…배울 점 참 많아

코로나 종료 땐 함께 무등산 올라 한국 더 보여주고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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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힘들지 않아요…”맷 윌리엄스 KIA 감독(오른쪽)과 통역 구기환씨가 지난 5월2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을 달리며 운동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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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감독의 곁에는 늘 한 남자가 있다. 윌리엄스 감독의 의사소통을 돕고 한국 생활을 지원하는 통역 구기환씨(34)다.

과거 오승환(삼성)의 메이저리그 시절 통역을 맡았던 구기환씨는 현재 윌리엄스 감독의 보호자이자 수호천사다. 그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윌리엄스 감독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잘 알 수 있다.

구기환씨의 하루는 오전 10시30분경 윌리엄스 감독과 함께 챔피언스필드에 출근하며 시작된다. 도착하자마자 라인업과 그날 경기를 대략 준비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웨이트훈련장으로 향한다. 1시간 동안 실내자전거를 탄 뒤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운동을 마치면 오후 1시 단백질 음료를 만들어 나눠 마시고 훈련 준비에 들어간다. 3시부터는 선수단 훈련을 한다. 구씨는 계속 감독 곁을 지키고 감독이 배팅볼을 던질 때면 펑고 훈련을 돕는다. 4시에 기자들과 인터뷰한 뒤 훈련을 마무리하고 경기 시작할 때까지 감독과 코치들, 프런트 사이 대화가 진행된다.

원정을 가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호텔 웨이트장에서 함께 운동하고 점심식사 뒤 오후 2시쯤 야구장에 도착한다. 보통 원정팀은 오후 3시30분 이후 야구장에 도착하지만, 윌리엄스 감독은 일찌감치 나가 수석코치와 회의한 뒤 또 뛰러 간다. 경기장 관중석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는 운동을 30~35분간 한다.

구씨가 KIA 팬들에게 더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운동 때문이다. “통역이 무슨 죄냐”며 재미있어 하는 팬들도 많다. 그는 “나도 좋아서 하는 것인데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며 “운동을 매우 좋아한다.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하시지 않았으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씨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바로 퇴근하지 않는다. 윌리엄스 감독이 늘 한 시간 정도 경기를 정리하는 타임을 갖기 때문이다. 구씨는 “경기를 마치면 곧바로 모두 퇴근한다는 것이 미국 생활과 다른 부분이다. 미국은 경기가 끝나고도 선수단 식사가 나오기 때문에 다들 씻고 밥 먹고 집에 간다. 감독님도 아직 그 습관에 익숙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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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감독(오른쪽) 곁에는 언제나 통역 구기환씨가 함께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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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야구가 없는 하루, 월요일에도 구씨는 윌리엄스 감독과 함께한다.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살피고 용건 없이 그냥 찾아갈 때도 있다. 구씨는 “감독님이 따로 이야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같이 있으려고 한다. 시즌 중에는 감독님과 가족이라 생각하며 지낸다”면서 “그냥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쉬는 날도 찾아가는데 오히려 감독님이 괜찮아 하시는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구씨는 늘 한결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기관리를 하는 윌리엄스 감독을 보며 30대 청년인 자신을 되돌아볼 때도 있다. 그는 “(감독님이) 정해진 일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지키신다. 운동도 스무 살 이상 어린 내가 훨씬 쉬워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힘들 때도 아무렇지 않게 매일 하시는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면서 “요즘에는 식사를 조절하느라 홈경기 때 점심을 아예 안 드신다. 목표 체중이 있어 캠프 때부터 관리하셨는데, 나도 같이 안 먹으며 체중 조절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을 할 때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통역은 질문의 의도와 감독의 설명을 정확히 파악해 전달하고 감독은 통역이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2~3차례 정도 끊어가며 답변을 한다. 그는 “감독님이 통역을 써본 일이 없었을 텐데도 타이밍을 잘 맞춰주고 차근차근 설명을 잘해주셔서 아주 수월하다. 원래 말 자체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하시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휴식일에도 늘 감독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구씨는 “스트레스를 거의 운동으로 푸시는 것 같다. 지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지만, 미국은 시즌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시기에 한국에 와서 야구를 하고 있으니 운이 좋다’고 늘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KIA 구단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윌리엄스 감독의 행보는 향후 몇 년간 KIA의 방향을 가늠할 열쇠다. 남은 시즌도 꿋꿋하게 달려야 하는 윌리엄스 감독에게 구씨와의 호흡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구씨는 “한국에는 예쁜 곳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은데 자유롭지 않은 시기라 감독님이 많이 보시지 못해 아쉽다. 나는 산 타는 것을 좋아하고, 감독님도 애리조나에서 산악자전거를 매우 즐기셨다. 상황이 나아지면 감독님과 함께 가장 먼저 무등산에 오르고 싶다”며 웃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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