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에 출연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주연 배우 러번 콕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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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영화를 보다가 웃음을 강요받는 순간이 있다. 여장을 한 남성 코미디언이 무대 위에 오를 때, 여성으로 인식되던 인물의 성전환 사실이 밝혀질 때 어디선가 코믹한 음악이 흐르고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를 보고 으레 토악질을 하는 반응 역시 ‘웃긴’ 것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 장면이 ‘안 웃기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직 미디어를 통해서만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대부분의 대중에게 ‘트랜스는 역겹고 웃기다’는 혐오의 문법을 각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전 세계 넷플릭스에 동시 공개된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는 잘못된 통념을 생산하는 미디어, 무지와 혐오로 가득한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트랜스젠더들의 목소리들을 섬세히 엮어냈다.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러번 콕스와 영화 <매트릭스>의 감독 릴리 워쇼스키 등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트랜스 창작가·사상가들이 등장해 할리우드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8일 기준 미국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가 98%에 달할 정도로 호평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할리우드 콘텐츠는 트랜스젠더를 ‘농담의 소재’로 간주하곤 한다. <디스클로저>에 인용된 미국 CBS 드라마 <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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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트랜스젠더가 어때야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미디어를 참고하죠. ‘나 같은 사람이 있나?’”
트랜스젠더 역시 미디어를 통해 트랜스젠더를 배운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일은 트랜스젠더에게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린 트랜스젠더에게 미디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이 된다. 그것이 설령 변태, 살인자 혹은 살인 피해자, 불치병 환자, 성 노동자 등 트랜스젠더에 대한 왜곡된 상만 비추는 거울일지라도 말이다.
죽이거나 죽는 사람, 살아있대도 성 노동 외에는 다른 직업을 택할 수 없는 사람. 트랜스젠더의 삶을 극한으로 좁힌 미디어를 보고 자란 트랜스젠더들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 인생에 다음이란 게 있나?” 심지어 ‘덜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미디어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트랜스 남성의 경우 인생의 ‘다음’뿐만 아니라 ‘현재’조차 상상하기 힘들다. 영화 제작자인 트랜스 남성 얀스 포드는 말한다.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더 나은 사회를 봐야 해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으면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봐야 하죠.”
<디스클로저>는 트랜스 여성과의 키스를 알아차린 뒤 구토를 하고 유난스럽게 양치를 하는 장면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에이스벤츄라> 등을 인용하며 “할리우드는 트렌스젠더를 보면 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말한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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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건 트랜스젠더가 더 다양하게 그려지는 거예요.” 작가 겸 배우인 트랜스 여성 젠 리차드의 말이다. 그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비판받는 트랜스 여성의 여성성 수행이 “(트랜스 여성 다수가 성 노동자로 내몰린 현실에서) 신체를 극한으로 여성화해야만 고객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을 위한 행동”에서 비롯한다고 이야기한다. 성 노동자가 아닌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삶이 미디어와 현실 양편에서 계속해서 ‘발명’된다면, 시스젠더 여성도 트랜스젠더도 더 이상 가부장제가 만든 고정관념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 제작자인 트랜스 남성 얀스 포드는 말한다.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더 나은 사회를 봐야 해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으면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봐야 하죠.”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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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성 전환을 이유로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켰다. 한 트랜스 여성은 혐오 여론에 직면해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가 당장 어딜가나 넘실대는 이곳에서, 할리우드의 고민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다가도 “세상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게 되는 작품이다. 첨예한 분석 위로 세상은 바뀌고 있고, 바뀔 것이라는 긍정을 느낄 수 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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