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비건 "난 최선희 지시받는 사람 아니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방한 첫 공식회견서 北에 불쾌감 "만나자고 한 적도 없는데 무슨…"

미·북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는 8일 "우리는 북한과의 만남을 요청한 것이 없다"면서 "이번 주 이뤄진 방문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국을 만나기 위한 것으로, 우리는 훌륭한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지난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7일 권정근 외무성 미 담당국장)고 비판한 데 대해 '보자고 한 적도 없다'고 맞받은 것이다.

전날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한 뒤 가진 약식 기자회견에서 "한 가지 명확히 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서 "나는 최선희 부상이나 존 볼턴 대사(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7개월 전인 지난 연말 방한해 최선희를 향해 공개적으로 '판문점 회담'을 제안하며 손을 내밀던 태도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조선일보

강경화 만난 비건 - 스티븐 비건(왼쪽)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하며 악수를 청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우리는 북한과의 만남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두 인물 다 가능한 것에 대해 창의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인 것과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2년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 여러 회담의 결과로부터 지침을 받는다"면서 "그들의 비전이 우리 팀의 지침"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 비전은 한반도에 더 견고한 평화를 가져오고, 한반도 내 관계를 변혁하고,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고, 한국 사람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이를 놓고 협상할 준비와 권한이 있는 카운터파트를 임명할 때 북한은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행동은 대화 없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 등 기존 원칙은 유지하되 북한이 협상 파트너를 정식 임명하면 협상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는 "나는 최근 '우리와 만날 준비가 안 됐다'는 몇몇 언론 보도를 봤다"면서 "(그 보도 내용은) 뭔가 이상했는데 우리는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요청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방문 목적은 동맹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대북 공조 협의체인 '한·미 워킹그룹'과 관련한 여권의 불만 표출에 대해 질문을 받았지만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워킹그룹 문제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새 안보라인과 8~9일 만날 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만나 미·중 갈등 대응 방안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조 차관은 이날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한 뒤 브리핑에서 "당면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 양측은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상호 수용 가능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반도 정세와 미·중 관계, 한·일 관계 등을 포함한 역내 정세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으며 개방성과 투명성, 포용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우리의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계속해서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 성격이 짙다. 공개 발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미 전략회의에서 화웨이·누크테크 사용 금지 운동, EPN(경제번영네트워크) 구축 등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관련한 협력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노석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