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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전 삼미 감독 별세...향년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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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인천 야구의 대부로 불렸던 김진영 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오른쪽 아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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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 3일 영면했다. 향년 85세.

故(고) 김진영 전 감독은 삼미의 초대 사령탑을 지낸 고(故) 박현식 전 감독과 함께 ‘인천 야구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다. 1935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고 재학 시절 팀에 3번이나 전국대회 우승컵을 안겼다.

고교 졸업 이후에는 실업야구팀인 교통부, 육군, 철도청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국가대표 야구팀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은퇴 후에는 중앙대, 인하대 야구부 감독을 역임하다 1983년 인천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삼미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해 당대 최고의 에이스였던 장명부를 앞세워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전·후반기 모두 2위에 그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고 김진영 전 감독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1983년 6월 1일 MBC 청룡과의 잠실 경기 중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분에 못 이겨 주심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마침 TV로 생중계된 이날 경기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시청했다. 결국 고 김진영 전 감독은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구속을 당했다.

이후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돼 풀려났지만 곧바로 감독직에 복귀하지 않고 1984년 사령탑에 돌아왔다. 하지만 삼미 팀은 두 시즌 연속(1984·1985년) 최하위에 머물렀다. 1985년에는 KBO리그 최다인 18연패의 수모도 당했다.

청보 핀토스로 팀 명이 바뀐 1986년까지 지휘봉을 잡은 고 김진영 전 감독은 1990년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으로 복귀했지만 한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8월 28일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이후 90년 대 중반까지 여러 팀 감독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고 김진영 전 감독의 아들은 프로야구 무대에서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경기 현 SPOTV 해설위원이다. 상인천중, 인천고를 거쳐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SK 와이번스 등 인천 연고 팀에서 줄곧 활약한 김경기 위원도 현역시절 ‘미스터 인천’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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