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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40일만에 침묵깬 윤석열 “권력형 비리는 모두가 피해자” 작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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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지휘권 파동’ 이후 첫 공개 메시지

동아일보

신고식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검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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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3일 오후 4시 30분 대검찰청의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검사가 형사법 집행을 할 때 유념해야 할 덕목을 강조하며 ‘독재’ ‘전체주의’ ‘법의 지배(Rule of law)’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윤 총장이 권력형 비리를 수사한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여권과 갈등을 겪는 도중에 나온 발언이어서 여권을 작심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 총장이 공개 발언을 한 것은 6월 24일 ‘인권중심수사 태스크포스’ 출범 첫 회의에서 “강제수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이후 40일 만이다. 윤 총장은 지난주부터 신고식 원고를 직접 다듬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윤 총장 지난주부터 원고 직접 다듬어

윤 총장은 신임 검사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며 “대의제와 다수결 원리에 따라 법이 제정되지만 일단 제정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이어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집행에 있어 ‘다수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가 우선되어야 하고, 권력자에게도 이미 제정된 법의 잣대가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 감찰 무마 사건 등을 수사하다가 여권의 사퇴 압박을 받았던 윤 총장이 작심하고 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설득과 소통도 이날 윤 총장 발언의 주요 키워드였다. 윤 총장은 “검사의 업무는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동료와 상급자에게 설득하여 검찰 조직의 의사가 되게 하고, 법원을 설득하여 국가의 의사가 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와 국민을 설득하여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추 장관이 지난달 2일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뒤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찰과의 소통을 거부했던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올 1월 부임한 이후 주요 사건을 처리할 때 대검을 설득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수사해온 것에 대한 견제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의견도 있다.

○ “출사표 던진 듯” vs “권력수사 되살려야”

윤 총장의 이날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비판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경찰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검찰총장으로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이유로 과잉수사를 하지 않으려면 절제된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 절제되고 균형 잡힌 검찰권 행사도 같이 언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날 발언은) 권력기관 개혁에 저항하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다. 그동안 윤 총장이 부정부패 척결을 이유로 검찰권을 남용하며 과잉수사를 해왔던 것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마치 출사표를 던진 것 같다. 내부 결속을 위한 정치적인 언어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총장이 원론적인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응할 필요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미래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며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 옵티머스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다시 깨우고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며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과 상식이 반갑게 들린 시대의 어둠을 우리도 함께 걷어내겠다”고 말했다.

통합당 김도읍 의원은 “민주주의 허울을 쓰고 합법을 가장하면서 민주주의가 우리도 모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윤 총장도 같은 고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고도예·박효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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