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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난 밀리터리 마니아… 2300쪽 중국 軍史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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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청 전산 공무원 권성욱씨 '중일전쟁' 이어 '군벌 전쟁' 출간

최근 서점에 들러 '중국 군벌(軍閥) 전쟁'이란 신간과 마주친 사람은 두 번 놀라게 된다. 1400쪽 분량의 방대한 내용으로 국내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20세기 초 중국 대륙의 군사(軍史)를 서술했다는 것이 첫째고, 저자가 이 분야의 전문 학자가 아닌 초야의 마니아라는 점이 둘째다.

"관심과 끈기만 있다면 일반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어렵긴 해도 자료 입수가 불가능하지는 않게 됐으니까요." 요즘 출판시장에서 뜨고 있는 '덕후 저자'의 대표 격인 울산시 중구청 전산직 공무원 권성욱(45)씨의 '중국 군벌 전쟁'은 5년 전 그가 낸 '중일전쟁'의 후속편이다. 두 책의 분량을 합치면 2300쪽에 이른다.

조선일보

권성욱씨가 지난 10년 동안 쓴 총 2300쪽 분량의 책 '중일전쟁'과 '중국 군벌 전쟁'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중국 군벌전쟁기의 자료 사진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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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마니아의 세계에서 소문난 고수(高手)지만, 그의 책은 디테일한 무기나 전쟁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야가 넓다. 게다가 무협지처럼 술술 읽힌다. "1911년 신해혁명부터 1930년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20년 동안은 춘추전국시대 못잖은 천하의 분열기였죠. 하지만 붕괴기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시대였습니다."

근대가 현대로 넘어가는 중국 5000년 역사상 최고의 급변기였으며 온갖 사상과 이론, 잠재력과 가능성이 꿈틀거렸던 시대라는 것이다. 거기에 '삼국지'의 전반부를 방불케 하는 군웅이 등장해 천하쟁탈전을 벌였다. 문무를 겸비한 반일 민족주의자 우페이푸(吳佩孚), 천하통일의 문턱까지 갔던 만주의 장쭤린(張作霖), 장제스와 건곤일척의 패권을 다툰 '붉은 장군' 펑위샹(馮玉祥), 낙후한 산시(山西)성을 발전시킨 옌시산(閻錫山), 남방의 명장 쑨촨팡(孫傳芳)….

"이들은 폭정만 일삼은 것이 아니라 각지에서 교육과 민중 계몽, 산업 발전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악당'으로 치부될 뿐이죠." 권씨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먼 옛날의 조조나 제갈량은 알아도 이 군벌들의 이름은 낯설어한다"며 아쉬워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중국 현대사가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인공인 '공산당사'의 동의어가 되면서 이 시대는 고작 청말 혼란기의 연장 정도로 의미가 격하돼 버렸던 것입니다."

울산대에서 조선공학을 공부하던 중 '삼국지'에 푹 빠진 권씨는 중국과 전쟁사 분야의 책과 논문을 열심히 구해 읽었다. 블로그에 '중일전쟁' 글을 연재하다 독자들의 권유로 책을 내게 됐다. "첫 책을 내기까지 5년,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지 또 5년이 걸렸습니다."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야 매일 한두 시간씩 꾸준히 공부하며 글을 쓰는 우보(牛步)의 세월이었다. 중문·일문·영문 등 자료 수백 종을 일일이 찾아봤고, 독해를 위해 한국방송통신대 중문학과도 다녔다.

막상 책을 내니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세상에, 언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느냐"는 것. 처음엔 "도대체 집에만 오면 뭐 하는 짓이냐"고 타박하던 아내도 지금은 이해해 주는 눈치라고 한다. 그는 "아빠 책이 나오고 나니 열 살 딸아이가 갑자기 '삼국지'에 관심을 가지더라"며 활짝 웃었다.

권씨는 "마오쩌둥의 공산혁명만이 중국 역사의 필연은 아니었고, 20세기 초 중국에는 다양한 미래가 놓여 있었다"며 "앞으로 중국이 다시 군벌전쟁기처럼 분열될 가능성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세기 중국 전쟁사 3부작'의 마지막 책인 '국공내전'의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울산=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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