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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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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외교부, 필리핀엔 "성추행 대사 보내라"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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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성추행 한국 외교관' 송환 요구는 거부하더니…

뉴질랜드에서 성추행 혐의를 받는 한국 외교관 A씨에 대한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여 외교적 논란을 자초한 외교부가 최근 필리핀 정부에는 "한국에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전 주한(駐韓) 필리핀 대사를 조속히 한국에 돌려보내라"고 강력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뉴질랜드의 성범죄 수사 협조 요청엔 미온적인 정부가 정작 다른 나라에는 원칙을 들이대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내로남불'식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 A씨는 현재 외교부가 성범죄 수사 요청을 하는 대상국인 필리핀의 한국 대사관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조선일보

외교부 찾은 뉴질랜드 대사 - 2017년 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면서 현지인 남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3일 오후 외교부 관계자를 면담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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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외교부는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에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노에 웡 전 주한 필리핀 대사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수사 당국에 따르면, 노에 웡 전 대사는 지난해 12월 주한 대사 근무 당시 30대 초반의 한국 여성을 동의 없이 뒤에서 끌어안으며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에 웡 전 대사는 올 초 문제가 불거지자 피소되기 전후에 귀국, 대사직에서 물러나고 잠적했다. 노에 웡 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현지 정치인 출신의 특임 대사로 알려졌다. 소환 조사가 어려워지자 한국 경찰은 그에 대해 지난 5월 인터폴에 요청해 적색 수배령을 발령했다. 적색수배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수배다. 외교부는 수배령이 발령된 이후 필리핀 당국에 노에 웡 전 대사 사건과 관련해 '우려'와 '유감'을 표하고 그에 대한 체포 영장이 집행되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외교 소식통은 "필리핀 정부가 수사 협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최근에도 외교 채널을 통해 이번 사건을 상기시켰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외교부가 뉴질랜드 남성의 엉덩이·사타구니 등 신체 여러 부위를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의 한국 외교관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등 수사 협조를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 한국과 필리핀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는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를 문제 삼는 뉴질랜드 정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3일 필리핀 주재 공관에 근무하는 A씨에 대해 귀국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날짜로 외교관 A씨에 대해서 즉각 귀임 발령을 냈다"며 "여러 물의를 야기한 데 대한 인사 조치"라고 밝혔다. 이 고위 당국자는 "뉴질랜드 측이 제기하는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식은 공식적인 사법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뉴질랜드 측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형사 사법 공조와 범죄인 인도 등의 절차에 따라서 우리는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이 같은 정부 방침을 설명했다. A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현지인 남자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뉴질랜드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뉴질랜드 사법 당국은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한국 정부에 주뉴질랜드 대사관의 폐쇄회로(CC)TV 영상 제공과 현장 조사 등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며, 정부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외교부의 이번 조치로 뉴질랜드의 반발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뉴질랜드가 언론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지난달 28일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에서 뉴질랜드 총리가 성추행 문제를 불쑥 꺼낸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출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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