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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감사원장 생각은 마지막까지 노출 않아야"...文이 찍은 '감사원 개혁 적임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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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저서 '운명'서 "감사원 개혁 연구 천착" 평가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감사원의 중립성'

한국일보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원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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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정치 논쟁에 휘말렸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최재형 감사원장의 편파 감사냐' 아니면 '여권의 최 원장 흔들기냐'를 두고 진영간 공방이 뜨겁다. '행정기관ㆍ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자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정치 공방의 중심에 선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감사원의 중립성이 의심 받는 상황이 정권마다 되풀이되면서, 감사원 운영 방식 전반을 짚어볼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는 윤성식(67)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윤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감사원장에 임명하려 했으나 야당 반대로 계획을 접었다. '친여 학자'로 분류되기 전에 윤 교수는 감사원을 비롯한 행정 혁신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검찰미래위원장 등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윤 교수를 “감사원 개혁 연구에 가장 천착해온 사람”으로 평한 바 있다.

최재형 원장은 올해 4월 감사위원회 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41%)을 언급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월성1호기 폐기에 찬성한다'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주장을 논박해 논란을 불렀다. 윤 교수는 “감사원장은 감사위원회의 위원장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마지막까지 노출하지 않는 게 좋다”고 최 원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피감사자인 백 전 장관이 해당 발언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 윤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자제돼야 한다"면서도 "감사원 중립성이 훼손됐는데 내부에서 시정할 수 없으면 내부 고발의 관점에서 외부로 보도되고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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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당시 최 원장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편향 감사' '강압 감사'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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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월성1호기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최 원장을 몰아세운다.

“정부의 정책 결정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감사원이 주관적 판단의 영역에 대해 비위 사실을 적발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감사원은 공직자 비위 사실 적발에 초점을 두는 감사를 해 왔다. 정책적 판단에 대한 감사 측면에선 경험과 역량이 전혀 축적되지 않았다.월성1호기 감사는 정책 결정에 대한 평가다. 감사원이 정책 결정 과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책 컨설팅을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_주관적 판단의 영역을 감사하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경제 타당성 검토 결과는 어떤 가정을 세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아주 높게 예측하면 ‘폐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위험성을 아주 낮게 예측하면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감사는 ‘원전 위험성을 높게 예측한 게 잘못이고, 낮게 예측했어야 한다’는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돼선 안 된다. 어느 선이 합리적인가에 대해선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답을 도출하려고 하는 정책 감사는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정치적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 감사원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 운영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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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 감사원을 비롯, 정부 개혁안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감사원장에 내정됐으나 한나라당 반대로 불발됐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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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감사위를 어떻게 개선하는 게 합리적인가.

"감사위가 1개의 결론을 도출하지 말고, '1순위 다수 의견, 2순위 소수 의견' 식으로 정부와 국민에게 제시하면 된다. 다양한 결과를 보여 주고 정부에 선택을 맡기는 것이다. 월성1호기 폐쇄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가정이 작용했다고 특정 감사위원이 평가한다면, 그 의견을 그대로 공개하고 어느 쪽을 찬성할지를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정책 평가는 ‘재판'이 아니라 '학습’이 돼야 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서로 상반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정책 공부를 하게 된다.”

_최 원장이 감사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득표율을 언급한 것을 놓고 여권은 '정부 결정을 뒤집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감사원장은 감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는다. 다른 감사위원 6명이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은 마지막까지 노출하지 않는 게 좋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이번 감사와 무관한 사항이다. 왜 그런 식의 토론이 이뤄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_백운규 전 장관 등 피감사자들이 언론에 감사 상황을 노출하는 것은 괜찮은가.

“내부 토론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면 감사원의 중립성을 저해하므로 원칙적으로 자제돼야 한다. 다만 감사원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내부에서 시정하지 못한다면 내부 고발의 관점에서 외부로 보도되고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감사원을 놓고 정권마다 잡음이 나온다. 감사시스템 자체가 문제 아닌가.

“대통령은 어떤 정책이 낭비이고, 어떤 정책에 더 예산이 필요한지 자세히 알 도리가 없다. 감사원의 정책 감사는 바로 이런 부분을 충족해야 한다. 감사원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국민이 진정한 세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공무원이 세금의 주인이다. 감사대상 기관이 너무 많아 감사원 활동에 한계가 있다. 피감기관의 감사부서가 1차 책임을 지고 감사원은 기관 내부 감사부서를 통제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거론했는데.

“감사원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된 제 4부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대통령 소속인 현재보다는 국회 소속이 낫다. 소속 문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감사원 내부 개혁이 절실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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