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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전범자산 현금화’ 이후엔 사과도 화해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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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강제동원 배상’ 대법 판결 이후

한·일 정부, 타협 불가 평행선

중국인 참사소송 화해 결실 맺은

‘하나오카 사건’ 해법 삼아야


한겨레

하나오카 광산 부근에 세워진 중국 순난열사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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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 한국에선 현금화 말고 그 뒤 화해 조처에 대해선 관심이 없네요?”

지난달 25일 ‘코로나 위기와 한-일 관계’라는 이름으로 열린 양국 원로회의를 지켜보던 일본 기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 내 일본인 특파원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 대해 가장 열성적으로 기사를 써온 그의 얘길 듣고 잠시 복잡한 감상에 잠기게 됐다.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 내 논의는 이미 고령인 원고들을 위해 ‘빨리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해야 한다’는 쪽과 한-일 관계를 생각해 양국 정부가 ‘외교 협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쪽으로 갈려 있다. 현재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당국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딱히 의견이 좁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우리 정부는 ‘정치적 리스크’가 큰 타협보다 현금화 이후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이고, 일본은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선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를 꺾지 않고 있다.

한-일 간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화상으로 진행된 원로회의에서 “역사 문제는 단순히 대법원 판결을 이행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자신이 관여했던 일본 기업들과 중국인 피해자들 사이의 ‘화해’ 사례들을 소개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하나오카 사건’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화해다. 태평양전쟁 말기 아키타현의 하나오카 광산에 배치된 중국인 노동자 986명은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폭동을 일으켰다. 살인적 노동과 폭동 이후 고문 과정에서 숨진 이는 전체의 42%에 이르는 418명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89년 중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시 광산을 운영했던 가지마구미 건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중국인 원고들의 오랜 투쟁은 2000년 11월 일본 법원을 통해 ‘화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일본 기업은 “중국인들이 받은 수난은 강제연행·강제노동에 기인하는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했다. 일본 지자체인 오다테시는 그에 앞선 1985년부터 현장 추도식을 열어왔다. 중국의 생존자·유족들이 참석해 현지에 세워진 ‘중국 순난열사 위령비’ 앞에 헌화한다. 2010년 4월엔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기념관도 개관했다.

한국 원고들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은 뭘까. 외교를 포기하고 현재 상황을 방치하면 우리 사법 절차에 따라 현금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원고들은 돈은 받겠지만 일본 기업들의 사과는 받을 수 없고, 한-일 화해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우치다 변호사가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이유다.

일본 시민단체에 따르면, 일본 피고 기업들은 그동안 “대법 판결이 나오면 따르겠다”는 뜻을 거듭 전했다고 한다. 결국, 이를 가로막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끈질긴 외교 교섭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외교를 포기해 얻어지는 것은 서로의 마음에 남을 불신과 증오뿐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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