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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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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굴욕적 탈출’ 부패혐의 스페인 전 국왕, 자국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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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철도 사업 개입 1,000억원대 뇌물 챙긴 혐의
한국일보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전 국왕이 퇴위 직전인 2014년 6월 9일 마드리드 인근 자르주엘라궁에서 엔리케 페나 니에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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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뇌물로 추정되는 1,000억원대 자금을 받아 은닉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82) 전 국왕이 스페인을 떠나기로 했다.

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왕실은 “카를로스 1세 상왕이 아들인 국왕 펠리페 6세에게 스페인을 떠날 뜻을 전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카를로스 전 국왕은 프랑코 독재정권 이후 1975년 왕위에 올라 38년간 재위하며 스페인 민주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프랑코의 철권통치가 끝난 뒤 스페인이 다시 독재의 길로 들어설 위험이 컸는데도 국왕으로서 중심을 잡고 입헌군주제를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그에 대한 사생활과 재정 문제 폭로가 잇따라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게 무색해졌다.

그는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가시지 않던 2013년 4월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에 값비싼 코끼리 사냥을 떠났다가 국민들의 눈총을 샀다. 또 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공금횡령 혐의도 불거져 2014년 6월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했다.

그러다 2018년 9월에는 그의 정부였으며 스위스 은행에 은닉된 그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독일 여성 사업가 코린나 라르센의 폭로로 부패 스캔들이 제기됐다.

카를로스 전 국왕은 사우디 측으로부터 8,800만유로(약 1,196억원)의 자금을 건네 받아 이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해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페인 대법원은 지난 6월 사우디의 고속철 수주사업에 카를로스 전 국왕이 부당하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수사 개시를 명령한 바 있다. 그가 스페인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 계약을 따내는 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는 것이다. 이를 라르센을 통해 스위스 비밀계좌에 넣어두고 세탁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렇게 세탁된 자금의 미래 수혜자가 현 펠리페 6세 국왕으로 드러나 카를로스 전 국왕의 스캔들은 현 국왕에게까지 악재가 됐다. 이에 펠리페 국왕은 지난 3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연금도 취소해 버렸다. 그는 이날 스페인을 떠나기로 한 아버지의 결정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스페인을 떠나기로 한 카를로스 전 국왕이 외국 어디에서 기거할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은 “카를로스 전 국왕이 스페인을 떠나 있더라도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정의는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스페인 정부의 반응을 함께 전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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