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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산단 입주 무늬만 네거티브 규제…고시 꼼수로 세탁업체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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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4일 부산 녹산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산단에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을 입주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업체 요구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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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정부가 산업단지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산업단지 입지규제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법적으로 정해놓은 업종만 산업단지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을 일부 제한 업종으로 지정된 것만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업종의 입주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확 푼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정부가 따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란 수단을 동원해 여전히 일부 업종의 산단 입주를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련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네거티브 규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기업이 고민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사업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꼼수 단서 조항으로 여전히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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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업종은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이다. 병원 환자복·이불·수건 등을 세탁하는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은 세탁 과정에서 나오는 오·폐수 때문에 폐수처리장이 필요한 업종이다. 이 때문에 이미 폐수처리장을 갖춘 염색업체가 많이 자리 잡고 있는 산업단지에 의료기관 세탁물 업체가 입주하면 시너지 창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염색업체와 의료기관 세탁물 업체가 폐수처리장을 같이 사용한다면 비용 측면에서 모두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의 산업단지 입주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산업단지에 입주가 불가능한 업종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열거하고 있다. 건설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등을 제한 업종으로 지정해놨다.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은 제한 업종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산업부는 고시를 통해 세탁물 공급업 자체를 산단 입주 금지 업종으로 지정해 놓은 상태다. 이처럼 네거티브 규제 전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입주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염색업체들과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 업체들이 크게 낙담하고 있다. 안 되는 업종 외에는 다 허용한다고 선언했지만 여러 입주 단서 조항을 걸어놔 사실상 '허가제'나 마찬가지인 제한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4일 부산 녹산염색산업단지에서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 업체 핸드의 김영환 대표이사는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을 산업단지에 입주할 수 있도록 10년 넘게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단에 입주하지 못한 일부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 업체들은 외진 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하면서 불법으로 폐수를 방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산업단지 외에는 폐수처리장을 갖춘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산 녹산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에 따르면 2~3개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 업체들이 녹산염색산업단지에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여한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단지법은 제조업을 유치해서 시너지를 얻게 하는 것이 목표로 입주하는 비제조업 업종도 제조업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며 "세탁물 공급업은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있고 산업단지 내 제조업과 시너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기업들은 산업단지 입지 네거티브 규제의 본래 취지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비판한다. 배영봉 한국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지난 5월 산업부의 산업단지법 시행령 개정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의 입주를 허용한다고 돼 있는데 의료기관 세탁물을 서비스업이라는 이유로 막는 것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요청했다.

박주봉 중기 옴부즈만은 "의료기관 세탁물 공급업을 산업단지에 입주시켜 달라는 건의가 10년째 이어지고 있고 관련 부처와 지자체에서도 취지에 공감하는 부분"이라며 "정부도 산업단지 입지에 관한 네거티브 규제를 내놓은 만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해결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산 =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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