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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대한민국에 떨어진 물폭탄

분노한 평택 매몰사고 유족들 "그 집중호우에 공사 강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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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시청에 신고도 않고 옹벽공사 착수
비상연락망도 없어 유족이 알아서 현장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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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경기 평택시 청북읍의 한 공장 건물에 토사가 쏟아져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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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분 전이었어요. 아이 아빠가 사고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시간이…”

두살배기 딸의 엄마 최모씨는 휴대폰에 '8월 3일 오전 10시 27분'이라고 찍힌 통화기록을 보여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경기 평택시 공장 건물 토사 붕괴로 숨진 남편 문모(31)씨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최씨는 평소처럼 받던 그때 남편과의 전화가 생전의 마지막 통화가 될 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3년 전 결혼한 남편 문씨는 잠시라도 쉴 틈이 생기면 아내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곤 하던 다정한 사람이었다. 최씨는 “오전 통화 이후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3시가 되도록 남편이 전화를 하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며 “남편이 일하는 작업장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창창한 30대 근로자 사망에 황망한 유족들


3일 오전 10시 29분 평택시 청북읍 반도체 장비 부품 제조 공장 작업장에 집중호우로 토사가 들이닥치면서 사망한 3명의 근로자는 모두 30대였다. 4일 사망 근로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평택시 안중읍 장례식장은 코로나19 탓에 조문객들이 많이 찾지 않았고, 아직 비극을 실감하지 못하는 유족들은 적막함 속에 간간이 통곡소리만 낼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닥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하루가 지나도록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사망자 차모(36)씨의 어머니는 아들 영정을 바라보며 “내 새끼 좀 어떻게 해보세요”라며 오열과 졸도를 반복했다. 옆의 가족들은 울부짖는 어머니를 챙기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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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이어지고 있는 3일 경기도 평택시의 한 공장에 토사가 덮쳐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친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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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어머니들끼리 한 빈소에 모여 오열하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며느리 부축을 받은 문씨 어머니는 차씨 어머니와 부둥켜 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냐”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발생하냐”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를 잃은 사실도 모른 채 엄마와 걸음마 연습을 하는 돌 지난 아이, 남편을 잃었음에도 자신이 울면 아이가 따라 울까 싶어 눈물을 꾹 참고 있던 젊은 엄마의 모습에 조문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유족들 "명백한 인재였다" 회사 성토


유족들은 “사고 소식을 통보받은 것도 한참 뒤였다”며 입을 모았다. 사망 근로자 이모(31)씨의 매형 허모씨는 “사고가 난 지 6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경찰로부터 처남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씨의 아내 최씨는 “남편이 일하는 공장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확인한 뒤, 소방서와 경찰서에 전화를 한 끝에 겨우겨우 남편이 있는 병원을 알아내 남편이 사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알고보니 회사에는 비상연락망 조차 없어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유족들은 이번 매몰사고를 명백한 인재로 규정했다. 차씨의 매형 박정현(42)씨는 “허가 받지 않은 가건물에 젊은이들을 몰아넣고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가뜩이나 오전에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현장을 보내는 게 말이 되냐”며 분개했다

평택시 역시 공작물축조 신고를 하지 않고 경사면에 옹벽을 세운 건축주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청 관계자는 “이번에 무너진 옹벽 등 공작물은 관할 지자체에 신고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면서 “추후 이와 관련해 공장 건축주를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택=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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