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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서울 도시철학 흔드는 50층 재건축 허용, 권한대행에 권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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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법정 계획으로 간주해온 ‘서울플랜’ 바꿔야 할 상황

행안부 지침상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행 업무 벗어나 논란

국토부 직권강제는 가능…내주 양측 층고 가이드라인 협의

[경향신문]



경향신문

‘저기가 잠실주공5단지’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 오른 시민들이 강남권의 대표적 재건축 추진 단지인 잠실주공5단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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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일 공공참여를 전제로 내놓은 재건축단지 ‘50층 허용’ 방안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은 고밀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도시기본계획을 유지하면서 개별 여건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공공재건축을 두고 정부와 엇박자를 낸 서울시가 반나절 만에 말을 바꿔 “정부와 이견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층수를 일률적으로 50층까지 허용하는 것은 민간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향후 재건축단지를 둘러싼 진통이 만만찮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35층 제한’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내부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3년 이후 단 한 번도 35층을 초과하는 재건축안을 허가한 적이 없다. 공공재건축을 조건으로 하더라도 강남 재건축의 ‘대장주’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5단지의 층수 제한을 풀어주는 것은 기존 방향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 또 향후 재건축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5일 서울시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를 풀면 서울시내, 특히 강남 재건축은 다 흔들린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아파트값 안정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35층 규제 완화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2030 서울플랜’이 발표되기까지 오랜 시간 시민들과 함께 연구해 만들어낸 서울 도시계획 철학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2014년 ‘2030 서울플랜’을 내놓고 ‘중심지체계 및 용도지역별 높이 기준’을 확정했다. 3종 일반의 경우 순수주거형은 35층 이하, 복합은 50층 이하로 제한하고, 2종 일반은 25층 이하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은마아파트와 같이 용도지역이 ‘그 외 지역’으로 분류되는 일반주거지는 3종 일반에 해당해 35층 이하로만 재건축이 가능하다. 박 전 시장은 2017년 6월 시의회 시정질문에서도 “2030 서울플랜은 최상위 법정(法定) 도시계획으로, 법정이라는 말은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크고 확실한 법상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로 21년째 ‘진행 중’인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매번 좌초된 데는 이 층수 제한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은마아파트는 2003년부터 현재의 14층 아파트를 헐고, 최고 49층 높이의 재건축을 고집하고 있다. 이번 정부 발표안이 은마아파트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조합 측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유도 결정권자인 서울시가 35층 규제를 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서정협 행정1부시장에게 기존 서울시의 입장을 뒤엎고 35층 제한을 완화할 명분이나 권한이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재건축 문제는 행정2부시장에게 일임해왔고, 박원순 시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존 도시계획 방향을 바꿔야 할 이유가 서울시에는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자치단체장 권한대행 시 업무처리요령’도 중요한 의사결정 등은 권한대행자의 통상적인 업무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명시한다. 또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에 따라 전기(前期) 자치단체장 재임 시부터 해온 정책 또는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에 중점을 맞춰 신임 자치단체장이 취임할 때까지 조직의 안정적인 관리에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서울시가 “층수 규제 완화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해당한다”며 결정을 보류하더라도 국토교통부가 직권으로 강제할 수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권한은 국토부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다음주 중 구체적인 공공재건축 방향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은 서울시 조례나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 진정되는 모양새다. 이날 박선호 국토교통부 차관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용도지역 중 순수 주거지는 35층까지, 준주거지역은 50층까지 가능한데 순수 주거지역이라도 도심 내에서 중심성이 있으면 준주거로 상향할 수 있는 도시계획 절차가 있고 얼마든지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지·기반시설 등의 여건을 고려해 정비계획 수립권자인 서울시가 변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류인하·박상영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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