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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베이루트 하늘엔 버섯구름, 거리엔 시신 가득… "핵폭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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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대폭발… 최소 100명 숨지고 4000명 부상

중동의 지중해 연안 국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 시각) 대규모 폭발 참사가 발생해 최소 100명이 숨지고, 4000여 명이 다쳤다. 레바논 정부는 2주간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레바논 당국은 항구에 대량으로 보관하던 강력한 인화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폭발이 일어난 시점은 4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항만의 대형 창고 옆에서 흰 연기가 나오며 화재가 먼저 발생했다. 불은 대형 창고로 옮아붙었고, 섬광이 보이더니 굉음과 함께 두 번의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 주변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상공에는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검은 버섯구름이 발생했다. 이국적인 정취 때문에 '중동의 파리'로 불리는 베이루트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조선일보

초토화된 베이루트 항구 - 4일(현지 시각) 중동의 지중해 연안 국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의 대형 창고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인근 건물이 무너져 있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폭발로 최소 100명이 숨지고 4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사고 현장 인근 건물에서 폭발 순간을 촬영한 장면. 폭발로 인해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검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트위터 캡처·AFP 연합뉴스 /그래픽=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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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이 워낙 강력해 시내 건물 절반가량이 파손됐다. 사고 지점에서 10㎞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유리창이 부서질 정도였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 땅의 흔들림이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160㎞ 떨어진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폭발음을 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소셜미디어(SNS)에는 폭발 직후 길바닥에 시신이 널브러진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비명과 함께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병원을 향해 달려가면서 아비규환이 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베이루트 시내 병원 응급실은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야전병원을 방불케 했다.

시민 왈리드 아브도씨는 AP통신에 "핵폭발 같았다"고 했다. 항구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같았다. 사방이 피투성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베이루트 시장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폭발 같았다"며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던 도중 울음을 터트렸다. 폭발 지점에서 반경 500m에 약 90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무너진 건물 잔해 수색 과정에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일간 르몽드는 보도했다.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 시민 약 30만명이 거주지 파손으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레바논에는 한국인이 140명가량 거주 중이다. 주(駐)레바논 한국대사관은 대사관 건물의 대형 유리창 2장이 산산조각 난 것 외에 한국인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이번 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항구에 대량으로 보관하던 질산암모늄을 지목했다. 폭발 직후 레바논 정부는 현장에서 2750t의 질산암모늄을 6년간 보관해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왜 장기간 안전장치 없이 폭발 물질을 방치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이유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요 외신들은 테러나 군사 공격보다는 화재로 인한 폭발 사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질산암모늄을 소홀하게 관리한 인재(人災)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폭발 사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장 폭발과 같은 형태의 사고가 아니었다"며 "그들(미군 장성들)은 공격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것은 일종의 폭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CNN은 3명의 미군 당국자를 인용해 "외부에서 공격을 가한 흔적은 없다"고 보도했다. 레바논과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이스라엘도 "이번 폭발과 이스라엘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외부 공격과 질산암모늄 관리 소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질산암모늄 보관 지점이 노출돼 누군가 레바논 사회에 타격을 주려고 고의로 불을 질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테러나 공격으로 확인된다면 중동 정세가 요동칠 전망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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