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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상청은 ‘올해 역대급 폭염’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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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난 6월30일 오전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서울 광화문 광장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곽경근 대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기상청이 올해 여름에도 어김없이 ‘죄인’이 됐다. 예보에 실패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구라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었다.

전문가들은 날씨 ‘예측’은 당연히 틀릴 수 있는 것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국 사회가 기상청 예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중부지방에서는 지난 6월24일 시작된 장마가 5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중 호우로 전국에서는 피해가 속출했다. 나흘간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14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됐다. 주택 815채와 축사나 창고 522개 동이 침수되거나 파손됐고 도로와 교량 728곳, 축구장 1만 개 면적인 농경지 7000여 ha가 피해를 입었다.

비난의 화살은 기상청으로 향했다. 기상청이 지난 5월23일 발표한 ‘2020년 여름철 전망’을 통해 평년 9.8일이던 폭염 일수가 올해는 최장 25일까지 늘어나며 “역대급 폭염”을 예보했는데 지난달 선선한 날씨가 계속됐으니 예측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또 기상청이 올해 여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들어맞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기상청의 오보 논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9호 태풍 ‘레끼마’와 10호 태풍 ‘크로사’가 동시 북상할 때 기상청은 “예측이 아닌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다”며 빈축을 샀다. 지난 2018년에는 제 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해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관측했으나 빗나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상청을 없애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기상청의 ‘2020년 여름철 전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망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기상청은 6월~7월 중순 기온에 대해 “일시적으로 북쪽 찬 공기 영향을 받거나 동해상에서 선선한 공기가 들어올 때가 있어 기온의 변화가 크겠다”고 내다봤다. 강수량 전망에 대해서는 7월 하순~8월 태풍 영향과 대기불안정에 의해 국지적으로 강한 비와 함께 많은 비가 내릴 때가 있겠다고도 예측했다. 현재 날씨와 맞아떨어지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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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상청 ‘2020년 여름철 전망’ 캡쳐.
기상 전문가들은 여름철 장마 예측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기 불안정이라는 변수와 기술적 한계 2가지 이유 때문이다.

김해동 지구환경학과 계명대 교수는 “장마철 비 적중률은 매년 30% 수준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항상 있었던 문제”라며 “봄, 가을, 겨울은 패턴이 일정해서 한반도에 비구름이 언제 오고 강수량은 얼마나 될지 맞히기 쉽다. 그런데 여름에는 언제 어디서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게릴라성 호우가 생길지 알 수 없다. 마치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일 때 어디에서 기포가 오를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장마전선은 동서방향으로 길고 남북방향으로는 폭이 좁다”며 “수치 예보 모델 해상도 범위를 벗어난다. 기술적으로 무리”라고 했다.

기상청 예측 결과가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단정적 보도가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례로 기상청이 발표한 ‘2020년 여름철 전망’에는 역대급 폭염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김승배 한국기상산업협회 본부장은 “기상청은 올여름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 비슷할 확률을 예측했다. 역대급 폭염이 온다고 한 건 기상청 예측을 과장되게 전달한 언론들”이라며 “기상청 불신 풍조를 부추기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날씨 예보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상청은 없어져야 한다는 여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다른 국가 기상청들도 예측이 틀릴때가 많다. 그런데 한국만 유난스럽게 기상청을 탓한다”며 “그 국가에서는 날씨 예보는 당연히 틀릴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언론 매체에서 예보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 교수는 “예보 정확도를 높여서 국민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뉴스 등 매체에서 예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미국의 경우 기상캐스터가 원인과 결과를 얘기해주고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후 예측 결과가 틀리면 ‘어떤 지점에서 추론이 틀렸다’고 설명해준다. 한국은 기상캐스터가 ‘언제 어디서 비가 내린다’ 결과만 전달하는 수준”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기상청을 비난하는 국민들이 많을수록 기상 예보관들이 주눅이 든다. 제대로 의견을 내지 못하면 예보를 더 틀릴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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