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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도를 주일미공군의 폭격 훈련구역으로 지정... 그러니까 일본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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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은 1946년 1월 29일 SCAPIN(연합국군 총사령부각서) 677호로 잠정적으로 한국영토로서 독도의 관할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연합국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분류하여 1951년 9월 8일 대일평화조약에서 분쟁지역에 대해 "유인도는 신탁통치하고, 무인도는 지위결정을 유보한다"라고 하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독도를 일본영토로 변경시키려던 일본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한국정부는 1952년 1월 18일 일본의 독도 주권 침략을 우려하여 평화선 조치를 단행하여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했다. 그런데 현재 일본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결정되었다는 증거로서, "일미행정협정으로 독도를 주일미공군의 폭격 훈련구역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일본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고 있다.

첫째, 일본정부는 "일본이 아직 점령하에 있었던 1951년7월 연합국 총사령부는 (SCAPIN) 제2160호에 따라 다케시마를 미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하였다"라고 하여 대일평화조약 이전에도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①독도는 1946년 1월 29일 SCAPIN 677호에 의해 대일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한국영토로서 관할통치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1951년7월 SCAPIN 제2160호로 주일미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은 대일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도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②1948년 주일미공군이 폭격연습을 하는 도중 독도에서 어선 10척 침몰, 한국어민 30여명이 희생되었다. 이때에 한국정부의 항의로 미국은 피해를 배상했고,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 지정을 철회했다. 만일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면 일본영토에 침입한 한국어민들에게 피해배상을 했을 리가 없고,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 지정을 철회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③일본정부가 친일파 윌리암 시볼드(부인은 일본계[장모] 영국인, 1946년-1952년 주일 미대사관 집정대사로서 6년간 일본 히로히토 쇼와천황에게 하명하는 일본의 점령통치 최고실권자, 1949년 도쿄대학에서 법학박사 취득, 1949년 12월 29일 제6차 초안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변경되도록 했고, 1950년 10월 11일 도쿄 주재 연합군 최고사령부 미 정치고문)에게 로비하여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정받기 위해 1951년 7월 시점에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 지정을 요청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 직후인 1952년 7월 미군이 계속하여 다케시마를 훈련구역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하자 일미행정협정(주: 구 일미안보조약에 근거한 협정. 현재의 '일미지위협정'으로 이어짐)에 근거하여 동 협정의 실시에 관한 일미간의 협의기관으로 설립된 합동위원회는 주일미군이 사용하는 훈련구역의 하나로 다케시마를 지정함과 동시에 외무성이 그 취지를 고시했다" 라고 하여 대일평화조약 이후에도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연합국군은 1947년 9월 16일 SCAPIN 1778호로 독도를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하였는데, 1948년 주일미공군의 독도 오폭사건으로 사상자를 내어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독도가 훈련구역에서 제외되었다. 그러자 일본이 독도를 일본영토로 변경하기 위해 윌리암 시볼드에 로비하여 1950년 7월 6일 2160호로 주일미공군이 훈련구역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독도가 다시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된 것이 미군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연합국이 SCAPIN 677호로 한국이 독도를 관할 통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독도의 지위가 유보되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독도가 일본영토로서 결정되었다는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미군에게 로비해서 다시 주일미공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1952년 5월 23일 야마모토 도시나가(山本利寿) 야당(개진당)의원이 외무성에 영유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독도를 훈련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고 실제로 지정되었다.

셋째, 일본정부는 "다케시마 주변 해역에서 강치 포획 및 전복과 미역 채취를 원하는 지역 주민들의 강한 요청이 있었으며, 미군 역시 같은 해 겨울부터 다케시마를 폭격훈련 구역으로 사용하기를 중지했기 때문에 1953년3월 합동위원회는 이 섬을 폭격훈련 구역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라고 하여 훈련구역 지정이 철회된 후에도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①1951년 9월 8일 대일평화조약이 체결되고 1952년 4월 28일 조약 비준을 앞두고 1952년 1월 18일 한국정부가 독도주변에 평화선을 선언하여 일본어선의 접근을 금지하였다.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면 조약이 비준되기 전이기 때문에 연합국이 한국의 평화선 조치를 철거시켰을 것이다. ②독도 주변에는 1952년 1월 이후 평화선 조치로 일본어민의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본주민이 조업을 위해 중지를 요청하였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③1952년 9월 주한미군의 허가를 받아 한국산악회가 독도에서 주일미공군의 폭격연습 상황을 확인하고 11월 10일 한국정부가 주한 미대사에 철회를 요구함으로써 한국정부의 항의에 의해 12월 24일 미극동군사령부가 훈련구역 지정을 철회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정부가 "일미행정협정에 따르면 합동위원회는 '일본 국내의 시설 또는 구역을 결정하는 협의기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다케시마(독도)가 합동위원회에서 협의되고, 또 주일미군이 사용할 구역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바로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임을 보여주고 있다" 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일미행정협정'과 독도 영유권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들 모두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한 것이다.
한국일보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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