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동료 돕다 물살 휩쓸려 13㎞… 구명조끼·우비가 살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춘천 의암댐 사고 기적의 생존자

'13㎞의 기적'은 우비와 구명조끼 덕분이었다.

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서면 의암댐 상류 500m 지점에서 전복한 선박에 타고 있던 춘천시청 근로자 곽모(69)씨는 물살에 휩쓸려 13㎞를 떠내려가고도 무사히 구조됐다. 수문에서 5m 아래 수면으로 떨어졌는데도 외상 하나 없었다. 119 구조대원은 곽씨를 보고 "이런 것이 천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곽씨는 구조 당시 탈진 증세를 호소하긴 했지만, 골절상도 없고 구급대원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다.

곽씨를 구조한 수상레저업체 대표 김현도(60)씨는 "2004년부터 춘천에서 수상레저업을 했는데, 사고 당시 물살은 16년간 좀처럼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빨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선착장에서 강물을 주시하던 직원이 살려달라며 손을 흔드는 곽씨를 발견해 제가 곧바로 보트를 타고 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거센 물살에 자칫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었지만, 곽씨를 구하기 위해 1시간여 동안 물살과 사투를 벌여 구조에 성공했다.

조선일보

댐 수문 쪽으로 떠내려가는 선박 - 6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의암댐 상부 500m 지점에서 뒤집힌 선박이 급류를 타고 수문 쪽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곽씨는 구조 직후 정신이 혼미한 상태이면서도 함께 일한 직장 동료를 먼저 찾았다. 김 대표는 "뭍으로 올라온 곽씨가 내뱉은 첫마디가 '배가 전복해 사람이 빠졌으니 춘천시청 환경과에 연락해달라'였다"면서 "함께 있던 동료를 찾는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곽씨는 발견 당시 위아래로 우비를 입고 있었으며, 구명조끼도 착용한 상태였다. 김 대표는 "우비와 구명조끼가 탈진과 저체온증을 조금이나마 지연시켜 생존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곽씨를 병원으로 이송한 춘천소방서 강촌 119안전센터 소속 구급대원도 "대부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갈 경우 물을 먹는데다 숨을 쉬지 못해 익사한다"면서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돌에 부딪혀 골절상을 입기도 하는데 이번 경우는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곽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난 5월 춘천시청 기간제 근로자로 자원해 하천변 쓰레기 수거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항상 묵묵히 맡은 일을 해왔다고 한다. 이날 곽씨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온 곽씨의 여동생은 "오빠가 '난 괜찮다'며 놀란 가족을 먼저 챙기려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면서 "아직은 말하는 것을 불편해해서 안정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생후 50일 아들 둔 30대 주무관·경찰정 조종수 50대 경위 등 5명 실종

조선일보

/조선일보


이날 전복한 강원 춘천 의암댐 선박 세 척 중 한 척에 타고 있던 이모(30) 춘천시청 주무관은 물살에 떠내려가 실종됐다. 그에게는 50일 된 아들과 춘천시청에서 함께 근무하는 아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8년 9월 공직에 입문했다. 공직 입문과 함께 평생 배필인 아내를 만났다. 부부는 '춘천시청의 원앙 부부'라 불릴 정도로 애정이 넘쳤다. 지난 6월엔 아들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날 자신이 관리하는 수초섬을 지키기 위해 출산특별휴가 중에도 급류를 뚫고 현장을 찾았다가 실종됐다. 이병철 춘천시 교통환경국장은 "이 주무관은 책임감이 강하고 직장 동료들과 우애도 깊었다"면서 "50일 된 아들과 아내, 직장 동료들이 애타게 이 주무관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만큼 반드시 살아서 구조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경찰정 조종수인 이모(56) 경위도 부인과 장성한 두 아들을 남긴 채 실종됐다.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춘천경찰서 서부지구대의 분위기는 침울하기만 했다. 일부 동료는 퇴근과 함께 수색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 경위는 관내 순찰정 조종 자격증을 가진 몇 안 되는 경찰이다. 이에 지난해 8월 서부지구대에 발령받으며 순찰정장이란 보직을 맡았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이 경위를 '천생 경찰'이라고 했다. 불의를 외면 않고, 항상 시민을 먼저 생각했다고 한다. 오이흥 서부지구대장은 "아침에 출근해 인사를 나눴는데, 별일 없을 것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실종자 중에선 사망자도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날 행정선을 타고 출동했던 이모(59)씨는 이날 오후 1시 4분쯤 사고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20㎞가량 떨어진 경기 가평군 남이섬 선착장 인근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사고 직후 경강대교에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사고가 발생한 춘천 의암댐부터 북한강을 따라 가평 청평댐까지 약 50㎞ 구간에 인력 800여 명과 헬기 7대, 구조 보트 등 장비 69대 등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5명의 행방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수색 작업은 오후 6시 30분쯤 일몰로 종료됐다. 관계 당국은 7일 일출과 함께 수색 작업을 재개할 방침이다. 김충식 강원도소방본부장은 "추가 생존자 구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작업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포토]의암댐 참사 부른 하트모양 인공수초섬…실종자 수색 재개, 범위 확대

[춘천=정성원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