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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유죄받은 대법관 후보 판결문엔…"독재타도 시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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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복역자 중 최초 사시 합격자인 이흥구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법고시 합격 당시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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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후보 중 한 명인 이흥구(57‧사법연수원 22기)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이른바 ‘국보법 사범’이다. 그가 대법관이 된다면 국보법 위반 1호 사법시험 합격자로 법원 최고직을 맡는 전무후무한 사례가 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이 부장판사의 1986년 1‧2심 판결문 전문을 받아 당시 그가 받은 혐의를 알아봤다.



“군사파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자”



이 부장판사는 1985년 1학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회부장이자 서울대 학생운동의 비공개 지도조직인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법원은 당시 이 부장판사를 “현 정권은 군사파쇼 정권으로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학생 세력이 연대한 투쟁을 통해 이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자”라고 규정했다.

민추위는 1985년 6월 의류제조업체 대우어패럴 노조를 중심으로 구로 동맹 파업이 벌어지자 지원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 부장판사는 당시 학내홍보와 선전을 맡았고, 대자보를 붙이거나 파업농성을 지원하자는 전단을 각 단과대학 사무실에 배포했다. 민추위는 지원 시위에 그치지 않고 농성 현장에 직접 침투해 노동자들에게 음료수와 음식물을 나눠줄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 부장판사는 각목과 플래카드, 성명서 등의 준비를 맡았다. ‘독재 타도’ 구호를 새겨 넣은 머리띠와 어깨띠, 방어용 각목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장판사에게 국보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항소 이유 “민족민주혁명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



이 부장판사를 포함한 11명은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가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먼저, 이들이 벌인 민족민주혁명은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 투쟁 정신을 계승하고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상의 모순점을 반성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이라고 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북한의 남조선 전략의 일부분이 민족민주혁명 이론과 유사하다며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했으니 이는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생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할 필요성을 절감해 집회에 참여한 것이므로 그 의도를 생각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오히려 1심이 선고한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맞섰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민족민주혁명 이념을 학원가와 노동현장에 확산시켜 1984년 이후 10여 차례의 대규모 폭력시위를 배후 조종했으니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사회 내부의 분열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2심서 유일하게 집행유예 선고받은 이흥구



2심 재판부는 11명 중 대다수에게 1심보다 약한 형을 선고했다. 이들이 공장 농성장에 침입하기로 계획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으므로 폭처법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장판사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유일하게 풀려났다. 그가 몇 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하며 반성하고 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민추위, 박종철 열사 사건과도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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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33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월 12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조성 예정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박 열사의 33주기 추모제에서 형 박종부 씨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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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위는 전두환 정권 시절 학내 외 각종 시위와 노사분규 배후에 있는 좌경용공세력이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2005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민추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이며 당시 관련자들의 자백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이 부장판사와 같이 구속됐던 고(故) 김근태 의원은 2014년 “고문을 당해 거짓 진술한 것으로 증거 능력과 신빙성이 없다”며 28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 발표로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박종철 열사도 민추위 관련 사건이다. 당시 박 열사는 민추위 수배자 소재 파악을 위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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