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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씨 마른 전세, 호가 1억 넘게 ‘껑충’… 정부 규제 ‘역풍’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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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보란 듯이… 전셋값 더 뛰었다

서울 2020년 들어 최대폭 올라… 58주째 ↑

세종 2.41% 최고… 대전 0.45% 올라

그나마도 매물 없어 서민들만 시름

전문가 “정부 정책 궤도 수정 시급”

세계일보

사진=뉴스1


지난달 말 서울 성동구 금호동 A아파트 전용 84㎡형 아파트 전세 만기를 맞은 B씨는 기존 전세 보증금대로 재계약하는 대신 집주인에게 현금 1400만원을 송금했다.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 200만원 정도로 임대차 계약을 변경하겠다고 하자 일시불로 현금을 제공하는 대신 그 금액을 깎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B씨는 “2년 월세 24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 아낀 것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느냐”며 “십수억원 하는 집을 당장 살 수도 없는 무주택 서민 입장에서 ‘임대차 3법’은 정든 동네를 떠나거나 수천만원 거주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올 연말 결혼을 앞둔 C씨 역시 A아파트 인근의 다른 아파트 같은 평형 전세를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불과 2주 전 7억5000만원대에 나와 있던 매물이 전월세계약청구권 등을 담은 임대차법이 통과하자마자 9억원으로 호가가 뛰었다.

그나마 전세 물건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C씨는 “말도 안 되는 9억원이라는 전셋값을 받아들이거나 반전세로 월세 165만원을 내야 하는데 지금 이 계약을 해야 하나 판단이 안 선다”며 “집 문제부터 해결이 안 되니 결혼 일정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명분만 그럴듯하고 실상은 전혀 모르는 정부 정책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한탄했다.

지난달 말 정부·여당이 전격적으로 도입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담은 임대차법이 시장 곳곳에 몸살을 부르고 있다. 특히 임대차법은 특정 지역, 특정 대상을 겨냥한 게 아닌 시장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라 그 후폭풍이 전국을 강타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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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으로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0.20%로 기록됐다. 이는 올해 최대 주간 상승률이며,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10월 26일 조사 당시 변동률과 같은 수치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내내 저금리에 따른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던 시기다. 2015년의 전세불안이 특히 심했다. 당시 서울의 곳곳에서 재건축 등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주택 멸실이 많았고, 이에 따른 이주 수요로 촉발된 전세난이 가중됐다.

이후 현 정권 들어 지난해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됐던 전셋값은 이번엔 정부 정책 탓에 흔들리고 있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계약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고 계약갱신 시 보증금 인상률이 최대 5%로 제한되자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 때 보증금을 최대한 올려 받으려 하면서 전셋값이 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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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연합뉴스


6·17 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는 조건으로 2년간 실거주를 의무화하자 전세로 줬던 집에 직접 들어오겠다거나, 전입신고만 하고 집을 비워두겠다는 집주인이 나오면서 전세 물량이 더 줄고 있다고 각지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제주(-0.04%)를 제외한 전국의 상황이 비슷하다. 최근 수도이전 논란으로 시장이 끓어오른 세종시의 전세금은 2.41% 올라 역대급 변동률을 기록했다. 대전(0.45%)과 울산(0.33%) 등의 상승률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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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를 찾은 시민이 서울도심을 내려다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주 0.14%에서 0.17%로 상승폭을 키웠다. 주간 기준으로 보면 작년 12월 30일(0.19%) 조사 이후 7개월여 만에 최대 상승했다. 또 58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고가 전세가 많은 강남 4구가 서울 전체의 전셋값 상승세를 주도했다. 강동구(0.31%)는 지난주(0.28%)에 이어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크게 올랐다. 지난주 각각 상승률이 0.24%, 0.22%였던 강남구와 송파구는 이번주 0.30% 올랐고, 서초구도 지난주 0.18%에서 이번주 0.28%로 오름폭을 키웠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임대차법 시행과 저금리 기조, 재건축 거주요건 강화 등으로 매물 부족현상이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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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뉴시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임대차 3법이 전세시장을 사실상 고사시키고 있다. 주택 구입을 하든지 월세로 전환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둘 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고, 사실상 시장이 마비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임대차 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궤도 수정이 시급하며,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량의 안정적 확대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번 주 0.04% 올라 지난주와 같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감정원은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율을 인상한 7·10 대책 후속 법안이 빠르게 처리되면서 매매시장은 안정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 4구는 모두 0.02% 올라 지난주와 상승률이 같았고 동대문구(0.05%), 중랑구(0.05%), 강북구(0.05%), 도봉구(0.04%), 노원구(0.04%) 등지 위주로 올랐다.

여권이 행정수도 재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세종시는 아파트값이 2.77% 급등하며 지난주(2.95%)에 이어 전국에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세종시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28.4%나 급등했다.

나기천·이정우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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