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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밥값 9만원 안 낸 생계형 가수에…4개월 감옥 보낸 법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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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중앙일보

현금 절도 이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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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두고 왔다"거나 "다음에 한꺼번에 계산하겠다"며 밥값을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비록 소액이더라도 상습적으로 무전취식을 한다거나 다른 죄가 있다면 징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밥값 8만9600원 때문에…



실제 9만원도 안 되는 밥값을 내지 않았다고 실형을 선고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징역형을 선고받은 블루스 작곡가·가수 이 모(50) 씨다.

표면적으로 그가 감옥에 간 이유는 무전취식이다. 무전취식은 대가를 치를 돈이 없이 타인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다. 이 씨는 지난해 9월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반계탕(1만4000원), 지난해 10월 삼성동 한 호텔에서 뷔페(5만5000원)를 먹고 돈을 내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서울역 2층 대합실 매장에 진열한 과일·계란(8000원)을 훔치고, 나흘 뒤엔 종로구 한 식당에서 판매하던 샐러드(6500원)를 돈 안 내고 가져갔다. 비슷한 시기에 편의점에서 우유(2개)를 비롯해 알로에주스·소시지 등 6100원어치 음식물도 가져갔다.

그가 저지른 5건의 절도 행각은 대금을 다 합쳐도 10만원이 안 됐다(8만9600원). 그런데도 서울남부지법은 그에게 지난 4월 4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 씨가 "과대망상·피해망상에 따른 심신장애를 겪는데, 법원이 너무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는 취지로 항소했지만, 지난달 24일 항소를 기각했다. 꼼짝없이 감옥살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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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일러스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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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이 씨가 저지른 범행이 소액이고 생계형 범죄라고 인정했다. 재판부(김인택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혼자 살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도 비교적 소액”이라고 판단했다.

소소한 생계형 범죄인데도 법원이 실형을 선고한 건, 그가 상습적으로 절도·사기 행각을 벌여서다. 이번 판결은 밥값·음식값을 지불하지 않은 5건의 사건만 대상이다.



앞서 옷 절도죄 '발목'



하지만 서울남부지법은 앞서 다른 판결에서 이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죄목은 역시 절도. 음식은 아니지만, 옷을 자주 훔쳤다. 외투 2벌(28만5000원·14만9000원)과 티셔츠(6만8000원), 롱코트(13만1100원), 그리고 원피스(13만9000원)를 몰래 가져갔다.

음식값보다 큰 77만2100원 상당의 의류 5벌을 훔쳤을 때만 해도 법원도 비교적 관대했다. 당시 재판부(이재경 판사)는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의 심신 상태가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고, 옷을 전부 반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의 집행을 유예한 상황에서, 다시 같은 절도 혐의가 드러나자 법원은 용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종 사기·절도로 처벌받았는데도 별다른 죄의식이 없다”며 이 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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