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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반 소주 vs 고급 소주 [명욱의 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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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소주는 대개 초록색 병에 든 ‘희석식 소주’(위 사진)와 안동 소주 등 고급 소주로 이어지는 ‘증류식 소주’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원액을 증류하고, 물에 희석한다. 그럼에도 두 가지로 나뉘는 이유는 원료의 정확성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크게 두 종류의 소주가 있다. 주로 초록색 병에 든 ‘희석식 소주’와 안동 소주 등 고급 소주로 이어지는 ‘증류식 소주’다. 그런데 이 구분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희석식 소주나 증류식 소주 모두 증류도 하고 물로 희석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증류주에 대한 개념은 중동의 연금술에서 왔다. 고대 중동에서는 세상의 모든 물질을 물·불·공기·흙으로 정의했고, 이들의 조합만 바꾸면 구리도 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와인에 불을 대봤더니 도수 높은 술만 따로 분리된 것이다. ‘주정’(酒精)의 발견이다.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덩어리라는 주정을 받아서 물로 희석해 만든다. 주정이란 한자 그대로 술의 정신, 술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즉 순수한 알코올(에탄올)로, 주정은 전문적인 공장에서 만들거나 외국에서 수입한다.

그렇다면 왜 일반 소주를 희석식이라고 부를까. 바로 대부분의 대규모 소주 공장에서는 알코올에 물을 넣는 희석 작업과 조미 작업만 하기 때문이다. 조미 작업은 말 그대로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맛을 만드는 것이다. 워낙 순수한 알코올이다 보니 맛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즉 발효 및 증류는 주정공장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공간에서 한다. 술을 빚는 곳에서는 직접 증류하지 않는다.

주정공장은 순수한 알코올을 만드는 것에만 주목한다. 순수한 알코올이란 맛과 향이 없는 알코올(에탄올) 그 자체다. 술 특유의 맛과 풍미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원료를 정할 필요도 없다. 좋은 농산물을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알코올만 만들면 된다. 그래서 늘 잉여 농산물을 이용하거나, 또는 조주정이라는 순도가 낮은 알코올을 수입해 정제한 뒤 소주 공장에 출고한다. 소주 공장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주정을 희석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들어진 소주를 희석식 소주라고 불렀다.

증류식 소주는 한 양조장에서 발효시켜서 그곳에서 증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재료가 쌀, 보리, 고구마 등 정확하다 보니 원료의 풍미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조장에서 직접 발효 및 증류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든 소주를 증류식 소주라고 불렀다.

다만 소주 공장에서 만드는 일반적인 소주도, 양조장에서 만든 증류식 소주도 발효와 증류, 그리고 물로 알코올 도수를 낮춘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다만 희석식 소주는 원료가 불분명하지만, 증류식 소주는 원료가 명확하다. 그러다 보니 증류식 소주는 원료의 맛을 가지고 있고, 각 양조장마다 특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

문제는 제품에 관련 표기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하루빨리 구분할 수 있는 표기법이 생겨야 한다. 어떤 소주가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다. 보다 다양한 맛의 소주를 마실 수 있도록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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