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지검장은 지난 8일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쓴 글에서 7일 인사와 관련해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행태가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법무부가 발표한 검사장 인사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분류되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 나자 사직서를 냈다.
문 지검장은 “전국시대 조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 전투에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혔느냐”면서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는 추 장관을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 이번 인사에서 요직을 차지한 검사장들을 무능한 장수에 빗대어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도 날 선 비판을 내놨다.
문 지검장은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고 “증거가 확보됐다면 (검·언 유착 의혹을 받는 핵심인물인) 한동훈 검사장이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추 장관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줬음에도 최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공소장에 한 검사장과의 공모 혐의가 적시되지 못한 점을 비꼰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하는 문찬석 광주지검장(왼쪽) 사진=연합뉴스 |
또 검사 출신인 김웅 미래통합당 의원을 언급하며 “언론에선 호남출신 검사들이 출세하고 중용된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남출신인 저와 김웅이 눈에 가시가 됐다. 반년 전 검사 김웅이 나갔으니, 이제 제 차례”라고 했다.
김 의원도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추 장관의 두 번째 검찰 고위급 인사를 겨냥 “여의도의 저승사자라고 했던 검사 문찬석은 가고 정권의 앞잡이, 정권의 심기 경호가 유일한 경력인 애완용 검사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문무일 총장, 문찬석 검사장과 같이 일할 때가 가장 좋았다, 판단력과 리더십이 뛰어나 한마디로 일할 줄 아는 분들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문찬석 검사는 범죄 앞에서 용맹했다. 수많은 수사 성과가 말해준다”며 “인사에서 밀릴 때도 자신보다 증권범죄합수단의 폐지에 대해 더 안타까워 했다. 서민들 상대로 한 금융사기는 더 늘어날 거라고 무척 안타까워했고 그 우려는 지금의 사모펀드 사건으로 현실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권력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는 검사들이 더 많다”며 “늑대는 사료를 먹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 지검장은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초대 단장을 맡았고, 2016년 시세조종 분야 공인전문검사 1급인 ‘블랙벨트’ 인증을 최초로 받은 금융범죄 수사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2017년에는 다스 의혹 수사팀장으로서 다스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밝혀내 재판에 넘겼다.
문 지검장은 지난 2월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윤석열 검찰총장 지시를 거부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다음은 문찬석 광주지검장의 글 전문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고, 사전에 물어봤으면 알아서 사직서를 냈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지, 참 이런 행태의 인사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지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는 본디 수사만 했던 사람이라 형사정책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 일 수밖에 없었는데, 대검기획조정부장으로 발탁돼 검경수사권 조정업무를 김웅 검사와 함께 담당하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부안의 잘못된 점을 설득했고, 만약 저나 김웅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당시 수사권조정 정부안을 힘으로 밀어붙이던 여당이나 조국의 민정수석실을 의식하고 인사 불이익이 두려워 딴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그렇게 소란스럽게 패스트트랙이라는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지난 1월 패스트트랙에 올라갔던 수사권조정안이 통과되고 김웅이 사직서를 냈을 때에 저도 그만두려고 결심했었습니다만, 검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터에 직위에 걸맞은 역할은 하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들도 있고 해 오늘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 2월 전국 검사장 및 선거전담부장검사 회의 석상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발언을 한 것도 검찰의 지휘체계가 무너져갈 것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국민들과 검찰 구성원 모두가 우려하는데, 그래도 검사장씩이나 하고 있으면서 아무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이미 죽은 조직일 것입니다. 그 누가 총장이었다 하더라도 같은 행태가 있었다면 저는 역시 그와 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본디 공직이라는 것이 한 겨울날 눈이 펄펄 나리는 들판에 찍힌 새 발자국 같은 것입니다. 그 들판이 온통 내 것인 양 싶지만 새 날아간 뒤 눈 한바람 나리면 흔적도 없는 것이지요. 오직 그 자리에서 바르게 소임을 다했느냐에 따라 명예와 긍지 또는 그러지 못했던 것에 따른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천하에 인재는 강물처럼 차고 넘치듯이 검찰에도 바른 인재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인재들을 밀쳐두고 이번 인사에 관해서도 언론으로부터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의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태에 대해 우려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전국시대 조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전투에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힌 것입니까?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나 조직의 역량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검사의 역량은 오랜 기간 많은 사건들을 하면서 내공이 갖추어지는 것이지요. ‘검사’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다 같은 검사가 아닌 것입니다. 각자가 키운
역량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요. 그것이 세상의 공평한 이치입니다.
중앙지검 수사팀은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습니다. 제가 검사 26년째입니다만, 강요미수죄라는 사건이 이렇듯 어려운 사건인지 처음 알게 됐습니다. 법리적으로 성립하는지야 제가 수사한 것이 아니니 알 수가 없지만 기소된 범죄사실을 보면 단순하기만 한데, 온 나라를 시끄럽게까지 하면서
수사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의혹을 생산해 내는 이런 수사는 처음 봤습니다.
급기야 ‘서초동 댕기열 사건’이라는 조롱까지 받는 천박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는 것이 저를 비롯한 동료 검사들의 심정입니다. 이 사건은 검찰청법에 규정된 총장의 지휘감독권을 박탈하는 위법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까지 발동된 사건입니다. 그것도 수사팀이 요구해서 그리된 것이지요.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증거들이 확보됐다면, 한동훈 검사장은 감옥에 있어야지요. 검사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태를 했다는 것인데 그런 범죄자를 지금도 법무연수원에 자유로운 상태로 둘 수가 있는 것입니까?
검사는 참과 거짓을 가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입니다. 참과 거짓을 바꾸려 하는 것은 이미 검사가 아닙니다. 또한 참과 거짓을 밝힐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검사의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검찰청법에 규정된 총장의 지휘감독권을 박탈하는 위법한 장관의 지휘권이 발동됐는데, 그 대상 사건의 실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사법참사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책임을 지고, 감찰이나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자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나 승진하는 이런 인사에 대해 국민들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후배 검사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생각하면 참담하기만 합니다.
장관께서는 5선 의원과 여당 대표까지 역임하신 비중 있는 정치인이십니다. 이 참사는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인사가 나기 며칠 전 이임식을 하지 않을 테니 준비하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이제 퇴임식이 되고 말았는데, 중앙지검의 저런 사건들이 낯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인데, 검찰의 주요 직책에 있던 제가 국민들께 무슨 염치가 있어 퇴임식이랍시고 하겠습니까? 담담하게 간부들과 차나 한잔하고 떠나겠습니다.
제게 좀 더 남아 있어줄 수 없느냐며 만류하신 총장께는 미안합니다. 남은 임기 1년은 일선과 직접 소통하면서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걸맞는 새로운 검찰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 훌쩍 날아 갈듯한 마음가짐’으로 공직에 임하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을 새기며 검사직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검사로서 한 순간도 부끄러운 결정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인사 불이익을 생각하며 옳은 일을 외면하는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검사로서 받을 수 있는 영예는 다 받았습니다. 초대 증권범죄합수단장으로서, 초대 남부지검 2차장 검사로서 현재의 금융범죄수사체계를 갖추고 금융범죄수사 최고전문가라는 영예도 얻었고, 국민적인 공분을 사던 다스의 실체를 밝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금년 1월에는 국가로부터 황조근정훈장도 수상했습니다. 이렇듯 저에게 과분한 영예를 주신 국가와 국민에 대한 공적 부채의식을 안고 살아가겠습니다.
언론에서는 호남출신 검사들이 출세하고 중용된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남출신인 저와 김웅이 눈에 가시 거리가 됐습니다. 반년 전 검사 김웅이 나갔으니, 이제 제 차례입니다. 김웅은 국회의원으로서 여의도에서, 저는 변호사로서 서초동에서 제 남은 역할을 다 하려 합니다.
검사로서의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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