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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번엔 코로나 의료진 희생 담아… 스크린에 펼치는 中 굴기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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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애국주의 영화의 정치경제학

역대 인기작품 1∼3위 애국주의 소재

2017년 ‘잔랑 2’ 수입 9500억원 달해

시나리오·연기는 기본… 시대정신 반영

블록버스터급 제작으로 재미도 더해

세계일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반 우한에 파견된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을 소재로 한 영화 ‘중국의사’를 만든다. 중국 후베이일보 등에 따르면 영화 제작진은 지난달 우한을 방문해 광범위한 현지 조사를 마무리했다. 영화는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서 내년 개봉 예정이다.

중국 유명 영화사인 보나 픽처스가 제작을 맡고, 애국주의 영화 ‘중국기장’의 류웨이창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대내외에 선전하면서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고 있는 만큼 이 영화는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자랑하는 ‘홍보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국주의 영화’의 흥행 공식은?… “시대정신 반영해야”

중국 박스오피스 역대 1위는 2017년작 ‘잔랑(戰狼) 2’로 입장 수입은 56억8000만위안(약 9500억원)에 이른다. 2위와 3위도 모두 류랑디추(流浪地球)와 훙하이싱동(紅海行動) 등 애국주의를 자랑하는 영화들이다. 이 밖에도 ‘나와 나의 조국’, ‘등반자’, ‘건군대업’ 등의 애국주의 영화들도 개봉 직후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중국 영화 역사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세계일보

영화의 흥행요소는 무엇일까. 당연히 훌륭한 시나리오와 연출은 기본이다. 거기에 배우의 깔끔한 연기도 중요하다. 영화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인 만큼 의상이나 디자인, 촬영과 컴퓨터 그래픽도 중요한 흥행요소가 된다.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시대 정신의 반영이다. 고대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도 그 안에는 현재의 시대상과 정신이 반영되어야만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중국 애국주의 영화의 흥행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중국인들의 시대 정신이 반영됐다.

잔랑2와 훙하이싱동이 나왔던 2017년과 2018년은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중국인에게 국가와 민족, 애국심에 대한 새로운 물결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해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영화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한 중국 영화 전문가는 훙하이싱동을 예로 들면서 “최근 누구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간가는데 중국인이 외국에서 피해를 봤을 때 중국 정부가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다는 자부심을 준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의사’가 제작 전부터 관심을 끄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첫 발병지의 오명을 뒤집어썼던 중국은 극적인 방역 성공으로 기사회생했다. 코로나19 발병 전보다 오히려 공산당 체제가 더 강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체제 우월성과 공산당 지도력을 과시하기에 이만큼 더 좋은 소재는 없다. 중국 매체들도 실제로 “영화 ‘중국 의사’는 중국 공산당 지도 아래 모두가 합심해 코로나19와 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애국주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업그레이드된 주선율 영화… ‘중국굴기’에 열광하는 중국인

중국에서는 ‘주선율(主旋律) 영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있다. 애국주의와 전체주의 등 중국 공산당 정책을 선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70년대 덩샤오핑이 개념을 제시한 이후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영화는 당과 국가를 미화하고 선전하는 전형적인 형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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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지항적이서 딱딱하고, 무겁기만 했던 주선율 영화들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내용이나 지향하는 목적은 변화가 없지만, 형식과 소재에서 다양한 파격을 시도했다. 당과 정부 정책을 수용하면서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블록버스터 형식으로 제작하거나, 유명 배우와 감독을 캐스팅해 연출력과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실제로 2019년 9월 30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 하루 전에 개봉한 영화인 ‘나와 나의 조국’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개봉 이틀 만에 7억위안(약 1178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가 총감독을 맡고 장이바이, 관후, 쉬정, 닝보 등 ‘드림팀’으로 불리는 감독 7명이 함께 연출에 참여하면서 개봉 전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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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화에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애국주의 영화는 ‘중국 굴기’를 상징한다. 초강대국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군사 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여기에 지난 100년 서구 열강에 의한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과 이를 극복하고 초강대국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현재 중국인의 시대정신이 담기면서 중국인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담보하기에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중국적인 색채가 강하다 보니 중국 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할지 몰라도 세계적인 관심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영화 전문가는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나라의 힘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약점이다”며 “애국주의 영화들이 현재 중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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