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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검찰개혁 시각차 점점 더 깊어지는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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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무실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아파트단지 맞은편, 오래된 사무용 건물 3층에 있다. ‘경제민주주의21’ 김경율 회계사,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조혜경 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등이 참여연대를 떠나 만든 단체다. 경제금융센터를 구성하던 핵심인사들이 통째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과거에도 분화 사례는 없지 않았다. 김상조 현 청와대 정책실장 주도로 만들어진 ‘경제개혁연대’가 대표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후신이다. 분화 당시(2006년) 사무처장은 김기식 전 의원이었다. 김기식 처장에 앞서 사무처장을 맡았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참여연대가 각 분야 전문운동의 산실,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경제개혁연대 이외에도 앞으로 자립 조건을 갖춘 센터들이 독립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민주주의21’의 분화는 다르다. 지난해 조국 사태 국면에서 상임집행위원회 내부에서 벌어진 분란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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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경제민주주의21·참여연대·민주노총 등 관계자들이 7월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 검찰의 기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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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촛불’ 대 ‘진보 기득권 비판’ 분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공통된 가치관이 있었나 싶다. 과거 이른바 ‘진보’로 뭉뚱그려져 있었는데 돌이켜 놓고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였나 하는 회의가 든다.”(김경율 회계사) “조국 사태로 드러난 것은 진영논리가 우리가 추구한다고 믿어왔던 가치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자기가 표상하는 가치는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보수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이권을 누리는 집단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정권을 잡고 나서 ‘진보도 이권이 가치를 앞서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전성인 교수)

지난 8월 3일 경제민주주의21 사무실에서 이 단체의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단체 활동은 이전 참여연대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경제 현안에 대한 단체의 입장을 내고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파기 환송심에 대한 논평을 담은 1호부터, 역시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유예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밝힌 18호 최근 논평까지 꾸준하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을 뜯어보면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주류시각과는 상당히 다른 프레임이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이 ‘검찰개혁’에 대한 시각이다.

전성인 교수의 말이다.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 검찰이 권력을 남용한다는데 검찰은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해임하면 된다. 한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야 검찰개혁이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건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다.”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경율 회계사는 “최근 1년만 보면 이분들(현 정부와 지지자들)이 말하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이미 거의 완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언론 개혁의 실체나 성과는 이미 만들어진 것 아니냐. 그들이 말하는 검찰개혁이란 권력형 범죄수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의미에서 개혁이라는 말 아니냐. 공수처 입법은 그들이 차지한 180석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이른바 한동훈 지검장의 검·언 유착 의혹 사건으로 언론개혁 실상도 큰 그림은 나오지 않았나.”

시각차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이른바 조국 사태 때부터였다. 서초동에 촛불을 들고 모인 이들은 검찰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인디언 기우제’식 짜맞추기 수사라고 주장하며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서초동 촛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펀드투자 의혹을 받은 조 장관을 ‘진보 기득권’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시각차는 검찰개혁 문제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주요 이슈마다 시각차가 불거졌다. 윤미향 의원 정의연 사태로부터 최근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둘러싼 평가까지 입장은 정반대였다. 앞으로 입장차는 얼마나 더 벌어지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서초동 촛불’ 시각 반대편의 중심엔 경제민주주의21의 활동이 있다. 개인 페이스북과 언론 기고, 강연 행사 등을 통해 집권당과 지지자들에게 비판적 시각을 보여왔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단체의 논평과 함께 후원계좌번호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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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7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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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은 결국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시간이 흐르면서 집권당의 개혁드라이브에 비판적인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 초기, 조 전 법무부 장관에게 사퇴 용단을 내릴 것을 공개 요구했던 신평 변호사(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검찰개혁 단상’ 글에서 “현재 검찰개혁의 요점은 검찰권의 무력화와 경찰권의 강화 그리고 윤석열 찍어내기”라며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했다는 현 정부에서 이 같은 어이없는 처사들이 거침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을 통제하고 나아가 권력에 복종시키겠다는 의중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나아가 검찰권 자체를 완전 무력화시켜버리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이 모든 일은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벌이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과거 민주 또는 개혁·진보라는 것을 내걸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보수냐, 진보냐 이런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서초동 촛불시위 이후 구도를 정확히 평가한다면 ‘친정권이냐, 반정권이냐’라는 구도가 오히려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 민주당의 전망도 이른바 ‘친문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낙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에서 1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낙연이나 이재명도 친문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참여한 사람은 세 사람이지만 흥행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사실상 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당 내에서 친문표를 얻기 위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후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도 자기 목소리를 마음대로 내지 못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질 것이고, 통합당은 어부지리로 지지율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과연 그렇게 될까.

최근 정부·여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해 시민사회, 구체적으로 경실련·참여연대가 낸 논평을 보면 마냥 지지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지난 7월 28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검찰개혁 권고안을 보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나눠 고등검찰청장에게 부여하고, 또 법무부 장관은 고등검찰청장을 수사 지휘하는 권력 분산안을 제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고등검찰청장은 추천위원회나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아 독립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정 권한분산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지방검찰청장에게 넘기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의 성명은 더 비판적이다. 경실련은 “검찰개혁의 본질은 ‘정치의 시녀’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고 검찰권 오남용 방지는 그다음의 과제”라며 “검찰총장 권한 분산에만 눈이 멀어 검찰개혁의 본질을 망각한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개혁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굳이 시민단체의 시각을 빌리지 않더라도 권고안은 “윤석열 현 총장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검찰 지휘부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의심에 기반을 둔, 결국 한 사람을 겨냥한 위인설관(爲人設官) 식으로 만들어진 권고안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적인 인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대학 동기(서울대 법대 79학번)라 고시 공부할 때부터 여러 차례 그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검찰이 하고 싶었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그런 검찰을 원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신임 검사들에게 한 발언(“민주주의 허울을 쓴 독재는 배격해야 한다”)도 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기개를 심어주고 싶어서이지 않나 해석한다.”

윤 총장이 80년대 초 학생 시절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의재판에서 검사 자격으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한동안 도피생활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윤 총장이 중도에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정도는 버텨줘야지 총장답지 않나. 법률상으로는 2년 임기가 보장되어 있고, 총장은 정권에 휘둘리지 말고 끝까지 가라는 것이 법률에 의한 명령이니 그것을 지키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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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법무부 검찰개혁위원장이 7월 27일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제도개혁 등에 대해 심의의결하고 권고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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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분화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과정”

반면 김남국 의원은 윤 총장이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윤 총장은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부터 윤 총장이 해온 굵직굵직한 수사들은 사실상 정치수사였고, 검찰조직을 내팽개쳐 둔 채 본인과 본인 측근들만 생각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객관과 중립을 견지하는 것이 검사의 중요한 의무인데, 윤 총장은 이미 그런 기본적인 책무를 포기했기 때문에 검찰 내부로부터도 비판을 받아왔다. 더 이상 불편하게 ‘검찰총장 정치’를 하지 말고 홀가분하게 당당하게 정치를 하면 좋겠다.” 사실상 물러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진보분화’와 관련,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는 “진보 운동의 역사를 생각하면 반공이데올로기나 박정희와 같은 신화 파괴자의 역할을 해왔다”라며 “이제는 집권세력이 되면서 스스로 그동안 쌓아온 신화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적인 의미에서 진보는 ‘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끊임없이 자기 부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라며 “어떻게 보면 고통스럽겠지만 분화는 불가피하며 당연하게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 전망과 관련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이 정부 스스로 목표한 만큼 검찰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정권 후반기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로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 출범 전후로 국정농단·적폐청산 수사를 위해 검찰에 힘을 실어주면서 검찰개혁도 물 건너가거나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 조국 장관 사태 이후 벌어진 권력 내 갈등이 역설적으로 공수처의 필요성이나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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