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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밤새 물 속에 있었을 오빠… 유골함 비어있지만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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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침수 피해 추모관 유족 분통
한국일보

9일 오전 광주 북구 동림동 극락강변에 위치한 S추모관이 물에 잠기면서 지하 안치단에 봉안된 유골함들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S추모관 침수피해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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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사촌 오빠가 폐렴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돌아가셨는데, 이번엔 물에 잠겨 숨도 못 쉬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피눈물이 납니다." "아버지를 모신 지 100일도 안 됐는데…."

9일 오전 광주 북구 동림동 S추모관 앞 잔디광장. 전날 밤 추모관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달려온 유가족들이 발을 구르며 새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꼬박 하룻밤을 지샜는데도 추모관 지하에 안치된 유골들이 여전히 물 속에 잠겨 있었던 터였다. 유족들은 "추모관에 침수피해가 났으면 유골함부터 옮겨야 하는데 추모관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사무 집기만 옮겼다고 한다"며 "만약 자신의 부모님이 안치돼 있었어도 그랬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산강 지류인 극락강변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이 추모관이 침수됐다고 관계 당국에 피해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8일 오후 8시 30분쯤. 지하 1층 안치관이 물에 잠겨 이 곳에 안치된 유골함 1,800여개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일보

지난 8일 오후 광주 북구 동림동 수변공원에 위치한 사설 납골당이 침수되자 납골당에 유골함을 모신 유가족들이 침수된 납골당 앞에 모여 항의하고 있다. S추모관 침수피해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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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침수가 시작된 건 이보다 앞선 오후 6시쯤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광주엔 7일부터 이틀동안 48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영산강 범람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신고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추모관 측은 침수 직후 유가족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가 오후 9시쯤에야 "정전으로 연락이 늦었다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만 남겼다. 참다 못한 유족들이 양수기 7대를 동원해 9일 오전 1시쯤부터 양수작업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오전 5시 30분쯤 살수차와 소방차 등이 추가로 투입돼 물빼기를 시도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분노한 유족들은 한때 추모관 벽을 뚫고 물을 빼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무시됐다.


이날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본격적인 물빼기 작업이 이뤄지면서 몇몇 유가족들이 유골함을 빼내기 시작했다. 납골당 관리 당국인 광주시와 추모관 측은 양수작업이 마무리되면 유골함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한 뒤 재화장해 다시 봉안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시는 유가족 측과 논의 중이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상당수 유골함이 실리콘으로 밀봉 조치가 안 돼 있어 침수 과정에서 유골이 유실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유골함은 뚜껑이 열려 있었고, 유골함에 고인의 명패가 없는 경우도 많아 분실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유족은 "유골함이 비어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추모관 물빼기 작업이 길어지면서 재난당국의 부실한 안전대책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유족은 "추모관이 극락강 바로 옆인데, 관리 당국인 광주시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냐"며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데도 유골함 이송 조치 등을 안 했다면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비판했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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