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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관제 펀드’들 애국심에 기댔다가 반짝 빛 본 뒤 사그라들었는데…장기 수익 앞세운 ‘뉴딜 펀드’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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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국판 뉴딜’ 재원 160조 중 16조 민간 조달 추진

이명박 ‘녹색펀드’·박근혜 ‘통일펀드’·‘청년희망펀드’ 등 부진

“제2의 재형저축 될 것”…“과도한 혜택 주면 뱅크런 사태 위험”

[경향신문]

경향신문

현대증권이 1999년 선보인 ‘바이코리아펀드’ 광고 현수막이 당시 서울 여의도 현대증권 사옥에 걸려 있다. 바이코리아펀드는 금융권이 정책금융에 참여해 선보인 사례로 ‘관제 펀드’의 원조로 꼽힌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동산을 대신하는 안전한 투자 대상이 될 것인가. 정권과 명운을 함께한 과거 ‘관제 펀드’의 불명예 역사를 이을 것인가.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들고나온 ‘뉴딜펀드’의 성패 여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시각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이미 금융권은 다양한 정책금융에 참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정책금융 관련 ‘피로도’가 그만큼 높다는 점도 뉴딜펀드 흥행의 장벽으로 꼽힌다.

9일 당정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이 드는 디지털·그린 뉴딜 등 한국판 뉴딜 재원 가운데 20조7000억원을 민간에서 끌어온다는 방침이다. 이 중 ‘뉴딜펀드’로 16조원을 민간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10조원은 공모펀드 형태로, 나머지는 퇴직연금 등 각종 연기금이나 기업의 자금 등을 끌어올 계획이다.

홍성국 민주당 의원과 우리자산운용은 지난 5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뉴딜펀드는 디지털·그린 뉴딜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원금과 국채 이상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그림을 내놓았다. 이후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이 일자 홍 의원은 “원금보장이 아닌 원금보장 추구”라며 말을 바꿨다. 자본시장법 57조에 따르면 펀드는 운용 결과에 따라 투자원금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손실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논란을 자초하면서 원금보장을 언급했던 까닭은 금융권에서는 용두사미로 끝난 과거 정책금융을 먼저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가 단적이다. 2009년 녹색성장이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2012년까지 42개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설정액은 30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2014년쯤부터 수익률 부진으로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10억원 미만 소형 펀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개설한 ‘통일펀드’도 정권과 명운을 함께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 발언을 한 이후 자산운용사들이 출시한 통일펀드는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이후 수익률이 급락했다. 2018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수익률이 잠시 개선됐지만, 추세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2017년 11월 ‘교보악사 우리겨레통일’이, 2018년에는 ‘하이 코리아통일르네상스’가 청산했다. 현재는 신영자산운용의 상품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15년 9월 만들어진 ‘청년희망펀드’도 시작 당시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가입해 화제를 모았지만 실적 부진 끝에 2018년 중단됐다. 정부의 애국심 마케팅은 대북 환경 변화와 수익률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애국심 마케팅의 원조는 뭐니뭐니 해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온 ‘바이코리아펀드’다. 현대증권은 1999년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며 바이코리아펀드를 선보였다. 바이코리아는 한때 수익률 100%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고, 대우 채권 등 ‘불량주식’을 사들인 여파로 수익률 -77%를 기록하는 등 부침을 겪다 사라졌다.

금융권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펀드 상품은 현 정부 들어서도 쏟아져 나왔다. 코스닥벤처펀드, 은행권일자리펀드, 필승코리아펀드, 채권안정펀드 등이다. 2018년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의 최근 2년간 수익률은 연 4%대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8년 출범해 해마다 1조원씩 조성하기로 한 기업구조혁신펀드도 올해 목표치 달성이 불확실하다. 수익률을 기준으로 볼 때 아직까지는 성공적인 펀드도 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출범한 ‘필승코리아펀드(소부장펀드)’는 실적이 양호한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해 화제를 모으면서 출시 3개월 만에 1000억원을 돌파했고, 최근까지 일부 종목은 40% 이상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뉴딜펀드의 경우 과거 관제 펀드와 어떤 차별화를 통해 수익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따라 성패 여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정은 일단 애국심보다는 수익률에 호소하는 판매 전략을 취하고 있다. 데이터 댐, 그린스마트 스쿨 등 국가 인프라 구축 사업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현만 금융투자협회 부회장은 지난 5일 간담회에서 “국가적인 프로젝트라고 해서 무조건 믿으라는 게 아니라 실제로 보면 이해가 가는 내용들이다. 이전 펀드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뉴딜펀드는 제2의 재형저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쿼리 등 외국계 사모펀드의 민자사업 참여와 유사하게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차세대(5·6G) 이동통신이나 자율주행차 등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겨냥하고 있어 충분한 수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기업 국가대표 금융지원 방안’ 등 뉴딜펀드와 유사한 사업에 자금지원을 하는 펀드들이 이미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정부가 펀드를 띄우기 위해 내놓는 조치들이 훗날 금융시장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뉴딜펀드에 과도한 혜택을 주면 예·적금에 몰린 안전추구형 자산들이 쏠리면서 저축은행부터 뱅크런 사태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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