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盧정부 국정원장 김만복 경고 "대공수사 경찰 이관 위험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북한 해외공작 거점만 200곳 보유

대공수사 핵심은 해외정보인 셈

경찰, 국정원 비해 정보력 취약

미국 CIA-FBI 모델 통할지 의문

지난 4일 국회서 발의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은 ‘대공수사권을 3개월 이내에 다른 수사기관에 인계’하도록 규정했다. 원안대로 법이 개정돼 내년 1월 1일 시행된다면 4월 이전에 대공수사권이 국정원에서 경찰로 넘겨진다는 뜻이다.

정부와 여당이 현재 구상 중인 국정원-경찰의 역할 분담 형식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해외 첩보 활동만 할 수 있고, 수사권은 없을뿐더러 국내 활동 자체가 엄격히 금지된다. 해외에서 미국 관련 첩보활동이나 테러 정보를 수집하면 국내 방첩과 수사권을 가진 연방수사국(FBI)에 이첩한다. FBI는 해외 첩보 활동이나 정보 수집 활동은 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국가정보원이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뀐다. 직무 범위에서 국내정보 및 대공수사권을 제외하는 등 추가 개혁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원과 경찰이 상호 협력을 강화하면 수사 공백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 수사권을 이관하면 대공수사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 전 원장은 “결론적으로 아주 잘못된 개혁이며,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현재 대공수사는 국정원-경찰-군 안보지원사령부의 3각 공조 체계로 이뤄지고 있다. 국정원은 해외에서 얻은 각종 정보를 단서로 광범위한 수사를 펼친다. 경찰은 국가보안법 7조(고무찬양) 관련 범죄를 수사하거나 국정원이 이첩하는 사건을 맡는다. 국정원이 경찰에 이첩하는 사건은 주로 형량이 낮은 사건이다. 안보사는 북한이 군 내부의 공작원을 포섭하는 ‘적군 와해공작’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공수사에서 관건은 해외정보 수집 능력에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3~2004년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간첩은 제3국을 경유하기 때문에 해외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재 200여 개의 해외 공작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해외 공작원들이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수사 관계자는 “중국 선양(瀋陽), 일본 도쿄, 동남아, 홍콩과 마카오 등 주요 거점에는 수사국 직원이 직접 파견돼 전문적인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앙일보

국정원대공수사권이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이 이런 국정원의 해외 첩보 활동을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찰은 인터폴을 매개로 각국의 경찰과 치안 정보와 범죄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또 경찰관이 영사로 파견돼 교민을 보호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공수사 관계자는 “경찰 주재관과 경찰 영사는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재국의 사법권 제한으로 해외 정보활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간첩의 해외 접선 장소와 조직 파악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공안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공수사를 경찰만 맡는다면, 해외에서 이뤄지는 대공 사건은 한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경찰이 현재 역량을 갖췄냐, 못 갖췄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만복 전 원장도 “국정원의 해외 정보수집 기능을 상실시키는 방향의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대공 수사 관련 주요 기관 명칭 변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의 대북 정보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대공수사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옥현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은 “북한 내부 동향을 비롯한 대북 정보가 쌓여야 대공 수사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며 “간첩망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융합해야 하는데 경찰이 이런 능력을 갖췄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경찰은 민주화 이후 대공수사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현재 36곳의 보안수사대에서 대공수사를 전담한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80명이던 경찰의 보안수사대 인력은 2018년 8월 기준 479명으로 101명이 줄어들었다.

경찰은 대공수사 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대공수사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정보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지만 수사권을 가져오면 점차 바뀔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국정원 개혁과정에 정통한 소식통도 “경찰도 과거 활발하게 대공수사를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그동안 축소됐던 기능을 살리면 국정원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1998년 서울경찰청 보안과는 북한을 찬양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피의자를 붙잡아 국가보안법 7조(고무친양)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인 뒤 증거자료를 공개했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공수사 역량을 이어가려면 기관 간의 협력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 개정 과정을 보면서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사권을 넘기는 법률만 밀어붙였을 뿐 구체적인 국정원-경찰 간 협력 방안이나 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대공 수사 조직을 해외 정보로 돌린다는 방침이지만, 정부 일각에선 일부 인원을 아예 경찰로 전직시키자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국정원과 경찰이 제대로 융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발표 후 국정원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해외 첩보 공조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우리 조직의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어떤 해외 공작원이 목숨을 걸고 활동하겠냐”고 푸념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수사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용한·이유정·김다영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