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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루카셴코, 대선승리로 30년 이상 집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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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이후 벨로루스 장기 집권…철권통치로 야권·언론탄압

코로나19 타격 경제회복, 악화일로 대러 관계 복원 등 과제 안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소국 벨라루스를 26년 동안 통치해온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6연임을 위한 대선에서 승리해 또다시 5년간의 집권을 이어가게 됐다.

최근 대선 운동 기간 중 언론 인터뷰에서 "26년을 권좌에 있었지만, 여전히 대통령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한 그의 희망이 실현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가중된 경제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극복하고, 선거 기간 동안 고조된 국민의 개혁 및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화답해야 하는 과제는 부담으로 떠안게 됐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란 별명을 가진 루카셴코 대통령은 인구 1천만명이 채 안 되는 벨라루스를 사반세기 동안 다스리며 자유 언론과 야권을 탄압하고 약 80%의 산업을 국가 통제하에 두는 등 옛 소련 스타일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계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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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투표 후 언론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련 시절 집단농장 농장주 출신의 루카셴코는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벨라루스 최고회의(의회) 의원에 선출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이듬해 열린 최고회의에서 소련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승인하는 '벨로베슈 협정'에 유일하게 반대해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소련이 붕괴하고 벨라루스가 독립한 후에는 반부패 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다.

루카셴코는 이 같은 명성을 등에 업고 1994년 치러진 첫 자유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독립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정부패 척결과 물가 안정, 폭력조직 소탕 등을 내세운 공약이 주효했다.

그는 집권 이후 정치를 안정시키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끄는 등 옛 소련권에서는 보기 드문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동시에 옛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벨라루스 KGB를 이용해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1996년 국민투표를 통해 초대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7년(2001년까지)으로 늘리고,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선관위원·헌법재판관·일부 국회의원 임명권을 부여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뒤이어 2001년 치러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또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해 동일인이 2차례 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제한한 헌법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단행하면서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곧이어 2006년 대선과 2010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3, 4기 집권을 이어갔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선거부정과 야권 탄압을 이유로 2011년 초부터 루카셴코 대통령과 그 측근 인사들에 대한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 등의 제재 조치를 취했으나 2016년 벨라루스와 루카셴코에 대한 제재를 일부 해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2015년 2월 우크라이나 내전 사태 해결을 위한 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4자 정상회담을 수도 민스크에서 개최해 '민스크 평화협정'을 체결케 하는 외교적 성과를 내고, 뒤이어 같은 해 8월에는 반제체 지도자들을 석방하는 등의 유화 조치를 취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루카셴코는 2015년 10월 대선을 통해 5기 집권에 성공한 뒤 국가 주도의 여러 개혁 정책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난 수년간의 경제 정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고 실업률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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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수도 민스크의 투표소에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30년 이상 초장기 통치 기록을 안겨줄 6기 집권에 성공한 루카셴코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우선 근년들어 악화한 '형제국' 러시아와의 갈등, 코로나19 등으로 침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올해 벨라루스 경제는 마이너스 4~5%의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코로나19에 대한 루카셴코 대통령의 '기이한' 대응은 주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그는 코로나19가 '정신병'에 불과하며 보드카와 사우나, 운동 등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면서 별다른 방역 제한조치를 취하지 않아 전염병 확산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첫 집권 이후 줄곧 의지해온 러시아와의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지난 1999년 연합국가 창설 조약을 체결하고, 2014년 옛 소련권경제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함께 출범시키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대한 원유·가스 공급가 인상에 나서고, 벨라루스의 주권을 제한하는 연합국가 창설을 추진하면서 불화가 생겼다.

벨라루스가 만성적 경제난을 겪는 와중에 러시아도 자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벨라루스에 대한 특혜 조치들을 폐지하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연합국가 추진 과정에서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단일 통화를 도입하려 하자 벨라루스는 주권 침해라며 반발해 왔다.

최근에는 벨라루스 보안당국이 대선 운동 기간 벨라루스의 사회질서를 교란하기 위해 러시아가 민스크로 파견한 민간용병업체 요원 3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루카셴코는 이밖에 선거 운동 과정에서 야권이 제기한 국유기업 민영화와 자원 의존형 경제구조 개선, 정치 민주화,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실용적 외교 노선 추진 등의 요구를 일정 정도 수용하며 고조된 여론의 불만을 달래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벨라루스 선관위 위원들이 9일(현지시간) 대선 투표 종료 후 개표하는 모습.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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