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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위법수집증거로 '무죄'…재판부 "가담 없었단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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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왼쪽부터)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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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삼성 노조와해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석방됐다. 이 전 의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1심에서 1년 6월의 유죄를 인정받고 법정 구속됐었다. 항소심은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법리적으로 무죄이지만, 결코 공모ㆍ가담이 없어서 무죄를 선고한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배준현, 표현덕, 김규동)는 10일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이 전 의장을 뺀 나머지 피고인들은 1심과 같이 유죄 판단을 받았지만 형량이 다소 줄었다.



다스 수사하러 갔다 발견한 노조와해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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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노조와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압수수색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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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이 전 의장측의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2018년 2월 8일 발부된 압수수색영장 집행 과정에서의 문제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노조 와해’ 건이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삼성전자 사이 다스(DAS) 사건 수사를 위해 1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영장에는 수색할 장소가 적혀 있는데 삼성전자 본사와 서초ㆍ우면 사옥의 해외지역총괄사업부, 경영지원총괄사업부, 법무실 등이 적시돼 있었다. 단서로는 "관련 물건이나 자료가 옮겨진 경우 그 장소를 포함한다"고 붙어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 이 영장 집행을 위해 부서 배치표 등을 확보하려고 인사팀 사무실에 갔다가 직원들이 증거인멸을 하는 정황을 포착한다. 인사팀 직원이 자신의 차량에 숨겨놓은 인사팀 PC 하드디스크를 발견한 검찰은 이를 봉인해 반출하는 방법으로 압수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인사팀 직원에게 1차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압수된 하드디스크를 열어 보니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부당노동행위 관련 자료가 나왔다. 이를 발견한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관련 범죄 사실로 2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관련된 파일을 압수하게 된다.



1심 증거능력 인정→ 2심 ‘위법수집증거’



이 1ㆍ2차 압수수색영장으로 얻은 증거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은 ‘인사팀 사무실’이 1차 압수수색영장에 적힌 수색ㆍ검증장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었다. 인사팀 직원이 숨긴 하드디스크가 발견된 장소 역시 단서에 붙은 ‘관련 물건이나 자료가 옮겨진 경우의 장소’에 해당한다고 봐서 1차 압수수색 영장 '집행 장소'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1심도 당시 검찰이 인사팀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압수를 당하는 사람에게 압수목록이 전달됐고, 이후의 모든 절차에서 참여권이 보장됐다는 점을 참작했다. 영장 제시가 없었다고 해서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이 침해된 것은 아니니 압수한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를 달리 봤다. 영장에 적힌 압수수색 장소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당시 인사팀은 영장에 적시된 여러 부서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항소심은 “영장을 함부로 확대하거나 유추 해석하면 사실상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압수수색을 하거나, 장소의 제한이 없는 영장을 허용하게 된다”고 판결했다.

또 2심은 “‘영장 제시’는 영장주의의 가장 기본 이어서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추후에 압수 목록을 줬다든지, 참여권이 보장됐다든지 등의 이유로는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위법이 치유될 수 없다고도 했다.



CFO보고 문건 증거 안돼…법리적으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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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0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3부는 삼성전자 자회사의 노조 와해 공작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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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차 압수수색때 확보한 하드디스크 등의 증거능력이 없어지면서 이 전 의장에게 인정됐던 공모관계를 더 이상 인정할 수 없게 됐다. 이 하드디스크에 이른바 ‘CFO 문건’이 포함돼 있는데, 1심이 노조 와해 문제가 이 전 의장에게까지 모두 보고 됐다고 본 근거가 된 문건이다.

항소심은 “CFO보고 문건이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어지면 이를 제외하고 이 전 의장이 (노조 문제를) 보고받았다거나 관여했다고 볼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무죄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은 “법리적으로는 그렇지만 만약 그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원심의 판단 유지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결코 피고인에게 공모ㆍ가담이 없어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라고도 했다. 지난 1심 때는 재판장이 이 전 의장을 법정 구속하며 “본인이 실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 증거가 명백해 재판부가 모두 눈감아줄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 전 의장은 항소심의 무죄 판결에 따라 구속 8개월여 만에 석방된다.



다른 피고인들 유죄 유지…형은 다소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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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1심 판결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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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던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2013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른바 ‘그린화 전략’을 세운다. 수리기사들이 소속된 협력업체부터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까지 조직적으로 움직여 노조 활동을 하는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파악해 회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등 등 노조 활동을 탄압했다. 일부 강성 노조원이 있는 협력업체를 기획 폐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사건 관계자 30명과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 주식회사는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1심에서 26명에게 유죄가 나왔고, 삼성전자 서비스는 벌금형을 받았다.

이날 이 전 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1심의 유죄가 그대로 인정됐다. 협력업체 그린화 전략 실행에 주도적 역할을 한 최평석 전 삼성전자 서비스 전무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받아 1심의 징역 1년2월보다 다소 줄었다. 마찬가지로 그린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박상범 전 삼성전자 서비스 대표도 징역 1년6월에서 징역 1년4월로 감형됐다. 노사 문제를 총괄한 지위에 있던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도 징역 1년6월에서 징역 1년4월로 조금 줄었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삼성전자서비스와 그 협력업체 사이의 지휘·명령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봐 근로자 파견관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판결 직후 성명서를 내고 "2심은 검찰이 확보한 상당수 증거자료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며 "이는 내부고발자가 나오기 전에는 자본의 노조파괴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할 길을 영원히 봉쇄하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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