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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지금 임대 놓으면 나중에 보증금 토해 낸다고?” [혼란의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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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스피드 임대차법’ 분쟁소지 키워

세계일보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인근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서울 송파구에 보유 중인 전용 75㎡ 아파트를 2년 전 전세보증금에서 10% 올려 4억4000만원에 재계약하려던 A씨는 중개사로부터 “나중에 보증금 일부를 세입자에게 환급해줘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세나 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인상 상한을 직전의 5%로 제한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때문이다. 개정된 임대차법은 임대료 상승 폭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정하도록 했다. 따라서 추후 그 비율이 확정되면 그 금액에 맞춰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국회가 지난달 말 국회 통과 이틀 만에 ‘초스피드’로 임대차법을 시행했지만, 조례 제정 등의 후속조치가 바로 뒤따르지 않아 문제로 지적된다. 주요 지자체의 임대료 상한 조례 제정은 그 절차 등을 따져봤을 때 빨라야 연말, 늦으면 내년 상반기쯤으로 예상돼 시장 혼란 장기화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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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와 각 지자체는 전월세 임대료 상한을 정하는 협의를 조만간 시작한다. 다만 조례는 각 지자체가 각 지역 현실에 맞춰 정할 내용이라 법무부·국토부 등 중앙 정부의 역할은 입법취지 설명이나 현황 파악 등에 그칠 전망이다.

또한 조례 제정 과정은 조례안 수립과 규제개혁·법제심사, 입법예고, 지방의회 상정·의결, 지자체 이송 및 심의, 행정안전부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보통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임대료 상한 제정 조례는 과거 입법례가 없고, 많은 국민의 재산권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엉켜 있어 그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일부 지자체는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쳐 조례를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조례 제정 전 각 지자체에서 이뤄지는 전월세 재계약의 문제는 없다. 조례가 없는 경우 상위법인 임대차법의 규정을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 지자체가 임대료 상한을 5% 아래로 낮춰 정하는 경우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경제상황이나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2% 대의 상한 룰 제정을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정 임대차법 시행 이후 체결된 계약에 대한 소급 문제가 불거진다. 정부가 이번 임대차법을 개정하면서 시행일 이전에 이뤄진 기존 계약에 모두 적용케 한 점도 임대료 상한 조례의 소급적용 가능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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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계약분에 대한 소급 적용은 시장의 혼란이 워낙 클 것이기 때문에 법무부와 국토부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법을 하나 만들면 그 효과나 부작용 등을 주밀하게 살피고 하위법령도 잘 손질했어야 하는데 임대차법은 너무 서둘렀다”며 “임대인과 임차인 당사자 간 분쟁 소지가 높아져 결국은 모두 법원으로 가야 될 텐데, 지금이라도 후속조치를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증가할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을 조정할 정부 기능의 한계도 지적된다. 이날 법무부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출범 뒤 올해 6월까지 위원회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은 총 6502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분쟁조정 신청 건 중 실제로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1522건(23.4%)에 불과했다. 국토부는 “분쟁조정위원회를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신속한 상담과 분쟁 조정을 실시함으로써 조기에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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