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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단독]갈데까지 간 피싱, 아파트까지 들어와 현금 26억 쓸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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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에 사는 5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31일 "곧 택배 물품이 주소지로 배송됩니다"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택배를 시킨 적이 없었던 A씨는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떤 물건이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자신을 “검찰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당신의 개인정보가 범죄에 사용돼 계좌를 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곧 금융감독원 직원이 집으로 갈 테니 돈을 전달하라"고 말했다. 금감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을 만난 A씨는 우체국에서 인출한 현금을 여행용 캐리어 가방에 담아 그에게 전달했다. 같은 방법으로 나흘간 총 13차례에 걸쳐 A씨가 전달한 금액은 총 26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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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그래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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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다고 느낀 A씨는 지난 5일 경찰에 “현금 26억 원을 보이스피싱으로 빼앗겼다”고 신고했다. 26억 원은 A씨가 유산으로 받은 주택을 팔아 마련한 돈이었다. A씨는 돈을 서울 시내 한 우체국 지점에서 인출했다. A씨는 우체국을 방문할 때마다 수천만 원에서 최대 3억원을 1만 원권 위주로 챙겨 여행용 캐리어에 담았다. 돈을 인출할 당시 우체국 직원에게는 "이민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체국 관계자는 "A씨가 직원이 제시한 체크리스트 중 '경찰·금감원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냐'는 질문에 '없음' 표시를 해서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검찰·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A씨에게 접근한 피의자는 총 5명. 보이스피싱범들은 단순 통화로 돈을 이체하게 하는 수법을 넘어 A씨를 직접 만났다. A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 후문이나 단지 안까지 들어와 A씨를 만나 돈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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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경찰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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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아파트 단지 CCTV 등을 이용해 피의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11일 경찰은 피의자 남성 2명(각각 20대·40대)과 여성 1명(20대)이 검거됐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5명은 돈을 전달하는 '수거책'일 확률이 높다"며 "대부분 보이스피싱 사건처럼 실제 주범이 따로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2년 새 피해액 2.7배"



금감원 관계자는 사건에 대해 "전형적이고 체계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라고 분석했다. 보이스피싱 전담팀 소속 관계자는 "누군가 수사기관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금융감독원 역할을 맡는 '역할극'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은행 계좌 추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은 2017년 2431억 원→2018년 4440억 원→2019년 6720억 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대출 상담을 해준다며 접근하는 '대출사기형'(76.7%)과 정부기관을 사칭해 범죄에 연루됐다며 접근하는 '기관사칭형'(23.3%)이 가장 많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절대로 특정 개인의 계좌로 이체를 요구하거나 현금을 직접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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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보이스피싱 척결방안 공동브리핑을 하고 있는 권대영(오른쪽)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과 홍진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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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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