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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Retirement Red Zone’과 ‘빨간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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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후반부 50년은, 지나 온 50년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시기로, 인생의 3대 위험이 도사리는 위험천만한 길이다. 그중 첫 번째 위험은, 퇴직 전 10년부터 퇴직 후 5년까지 이어지는 “퇴직 레드 존”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퇴직 후 약 10년에서 약 13년에 이르는 사회적 분리수거 구간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생애 퇴적 구간으로, 평균적으로 소득이 단절되는 73세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는 구간으로 정의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Retirement Red Zone’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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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Red Zone’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먼저 직업적인 측면부터 살펴보자.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발표한 ‘2018 은퇴백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25~74세 중 퇴직자 500명은 평균 62세에 퇴직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퇴직 나이는 57세라고 발표했다. 조기 퇴직을 결정한 사유로는 건강 문제(33%),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퇴직이 24%에 달한다는 이유를 달았다. 반면 아직 퇴직하지 않은 1953명이 꼽은 퇴직 예상 연령은 평균 65세로 조사됐다.

‘Retirement Red Zone’에서는 직업 전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신의 능력을 가치로 인정받는 전환이기보다는, 오히려 가치를 낮추어야 하는 전환을 뜻한다. 결국엔 가계 경제의 근간이 되는 돈 줄의 통로가 축소되는 것으로, 퇴직자의 삶을 위축시키는 단초가 된다. ‘2019 전성기 리서치-퇴직한 다음 날’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보고서는 퇴직 후 5년 이내의 만 45세부터 70세의 대한민국 남, 녀 총 700명을 조사한 것으로,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퇴직했음을 느끼는 순간’에 관한 것으로,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334명), 가 1위였다. 그다음은 “평일인지 휴일인지 헷갈릴 때”(276명)이고, “밥값을 선뜻 내겠다는 말이 안 나올 때”(262명), “나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223명), “재직 중에 알던 지인에게 연락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217명),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밀 명함이 없을 때”(154명) 순이다.

답변의 기저엔 일과 무관하지 않은 퇴직자의 상실감이 존재한다. 특히 퇴직 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뜻이고, 이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소득 없는 노년은 주머니 상황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소소한 일상까지 버겁게 만든다.

‘Retirement Red Zone’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가족 분산이다. 이는 자녀들이 출가하면서 부모들만 남게 되는 것으로, 가족 분산은 부모와 자식 간 동거 기간이 끝났음을 뜻한다. 80년 말, 90년 초만 해도 여성은 20대 초중반, 남성은 20대 후반에 결혼했다(통계청/1992년, 초혼/남자 28.01세, 여자 24.93세) 필자처럼 60년대 출생한 자녀(합계출산율 6명)들이 성장하여 결혼할 때는, 한 자녀의 결혼 비용을 넉넉히 사용할 처지도 아니어서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신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결혼 적령기도 늦어져서 2018년 기준으로 남녀 모두 30세를 넘긴 상황이다(男 33.6세, 女 30.4세). 이는 부모 퇴직 전에 자녀 결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자녀 결혼은 퇴직한 부모에게 치명적 위험을 야기시킬 수 있다. 요즘 결혼은 과거와 같지 않아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다 보니 자녀 스스로 준비한 자금으로 결혼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물론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하는 예가 없지 않지만, 청년 실업이 급증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결혼 자금이 넉넉한 예비부부는 소수에 불과하다. 당장 신혼살림을 차려야 할 전세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대출받는 일이 허다하다. 새로운 시작부터 빛을 지고 출발하는 자녀가 걱정된 부모는,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부모가 가진 것이라고 해 봐야, 주택 한 채와 자동차, 그리고 퇴직금을 포함한 약간의 예금이 전부인 상황이다. 길어진 노년을 버티기에도 부족한 형편인데, 생명 줄과 같은 자산을 자녀 결혼비용으로 써야 한다면, 노년기 삶은 생각보다 빠른 빨간 경고등을 켜야 할지 모른다.

‘Retirement Red Zone’으로 지목한 15년은 누구나 지나가야 하는 인생 여정 길이다. 이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상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퇴직 설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퇴직 설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필자의 대답은 한 가지뿐이다.

‘지금 당장’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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