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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특파원 칼럼]코로나19와 미·중 신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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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의 등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중국에서 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병했고, 미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기막힌 역사의 우연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양대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과 중국이 협력의 시대를 끝내고 경쟁과 갈등의 시기로 접어든 상황에서 코로나19가 관계를 급속히 악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경향신문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그간 미·중 경쟁을 두고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종종 동원됐지만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존재론적 경쟁’을 벌였던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비해 미·중은 너무 깊숙이 연결돼 있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양분됐던 냉전 시절에 비해 전 세계도 훨씬 더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정은 달라졌다. 코로나19 이후 미·중은 마치 뺨때리기 시합을 하는 모양새다. 오가는 말과 행동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제 미국 언론에서 신냉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은 본격적인 이데올로기 대결을 예고하고 나섰다. 백악관이 지난 5월 공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중국과의 신냉전 선언과 다름없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경제와 안보 외에 ‘미국의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전방위적 중국 봉쇄를 다짐했다. 경제와 안보 영역의 대립에 그치지 않고 가치의 영역에서도 적개심을 드러냈다. 중국공산당 일당체제, 인권탄압,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정치 및 이데올로기, 영토 영역에 대한 비판과 개입을 집중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미·중 수교의 주역인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도서관에서 한 연설도 의미심장하다. 중국공산당을 ‘마르크스·레닌 정권’으로 규정하고, 시진핑(習近平)을 중국 국가주석이 아닌 공산당 총서기로 부르면서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신봉자’라고 비판했다. 냉전 시절 미국이 소련에 들이댔던 단골 프레임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러시 도시는 “미·중의 국력 격차는 좁아졌지만 이데올로기 격차는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냉전의 특징인 강대국에 의한 편가르기 경쟁도 재연될 조짐이다.

세계적인 냉전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남북이 대치 중인 한반도는 역사적·구조적으로 냉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한반도에 드리운 냉전의 그늘을 거두기 위해선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 판에 신냉전 구도의 현실화는 당혹스럽다.

다행히 신냉전 국면은 초입이다. 냉전도 불사하겠다는 미·중의 ‘전투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상호공존과 협력의 미덕은 여전하다. 국가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사람과 상품과 문화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존을 도모했던 경험은 갈등과 분열, 대립과 충돌의 시대로의 회귀를 막아야 한다는 분명한 명분을 제공한다. 인류가 당면한 도전인 코로나19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협력은 더욱 절실하다는 여론을 키워나가야 한다. 코로나19라는 우연적 사건의 부정적 파장이 필연으로 굳는 것을 막을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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