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양치기 소년' 된 재난문자, 열흘간 2246건…"이제 안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손 씻어라'도 재난문자와 섞여…시민들 '무감각' 초래

긴급 재난경보 등의 알림과 구분해야…지자체 '문자생색'도 그만

뉴스1

서울 영등포구 63아트에서 바라본 올림픽대로가 통제돼 텅 비어 있다. 아래는 물에 잠긴 한강공원 일대. 2020.8.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씨는 지난 6일 하루에만 총 15통의 '안전안내문자'를 받았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내부순환도로,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 올림픽대로가 통제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안전안내문자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강과 탄천, 중랑천엔 홍수주의보가 발령돼 접근을 금지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A씨가 받은 15통의 안전안내문자에는 이같은 긴급경보만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Δ상시 마스크 착용 Δ휴게소 머무르기 최소화 Δ손 자주 씻기 등과 같은 내용도 '안전안내문자'에 포함돼 있었다.

최근 집중호우, 산사태 등으로 긴급경보가 이어지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 재난안내문자를 반복적으로 발송하고 있다.

하지만 산사태 경보나 침수 예보 등 긴급 대피를 요하는 재난문자에도 시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지난 2월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안내문자 '공해'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에게 재난문자 자체가 '양치기 소년'과 같은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들어 열흘간 발송된 재난문자 2246건…전년比 6500% 폭증

1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발송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및 각 지자체의 재난문자는 총 91건이다. 문자를 보낸 주체는 행정안전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물론 전국 시군구청 등 지자체와 한강홍수통제소, 낙동강홍수통제소, 국토관리본부까지 다양하다.

이 날은 그나마 비가 잦아들고 주요 지표의 홍수통제수위가 낮아지는 등 그나마 나은 상황이어서 재난문자가 이 정도다. 전국적으로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수해가 빈발한 8월1일부터 이날까지 정부와 지자체가 발송한 문자는 무려 2246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행정안전부 등이 폭염경보 등을 발령하며 발송한 재난문자는 단 34건에 불과하다. 올해 8월 초 재난문자는 전년동기대비 6500%나 급증한 수치다.

재난문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지난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면서다. 2019년 11월과 12월만 하더라도 한달에 30~40건만 발송되던 재난문자는 2월 한달간 2858건으로 폭증했다. 3월에는 4547건으로 치솟았다.

4월부터는 월 2500건 안팎으로 '안정세'를 되찾긴 했지만 여전히 평년에 비하면 200배 정도 많은 수치다.

다만 이 기간 한달에 2500건 정도 발송되는 재난안내문자에는 '손 씻기를 잊지 말라'거나 '마스크 쓰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기' 등 일상적인 안내문자도 재난문자로 발송이 돼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강남구청 등 일부 지자체는 '격리자 가족을 위한 호텔 할인', '해외입국자 리무진버스 제공' 등을 재난문자로 발송해 빈축을 샀다.

재난문자는 한번 수신하면 스마트폰의 모든 활동이 중지되고 그 위에 문자 내용이 표출된다. '확인'을 누르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운전중 내비게이션 위에 재난문자가 표출되면 계속 안내를 받기 위해 운전 도중 위험하게 문자 '확인'을 눌러야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재난문자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고 둔감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예 재난문자를 꺼두는 현상도 나타난다.

뉴스1

기상정보와 도로통제, 코로나19 안내 등으로 각기 발송된 '안전안내문자' 내용.©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긴급대피 등 '재난상황'과 '일상안내' 문자 알림 다르게 해야


재난문자는 '행정안전부 예규 제 14호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자연재해나 감염병, 황사/미세먼지, 산불, 테러, 교통사고 및 도로통제 등 다양한 상황에서 발송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보내는 재난문자부터 '손씻기 안내'까지 문자 발송 자체가 위법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번 집중호우 상황에서 발생한 '긴급 홍수경보', '긴급 산사태 경보'와 같은 국민들의 즉각적인 대피가 필요한 '긴급재난문자'의 경우와 일상적인 행정안내, 국지적인 상황 발생 안내 등은 '안내의 정도'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요구다.

이에 대해 재난문자 발송을 담당하는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기간통신사업자는 법에 따라 재난문자를 요금부과 없이 발송하도록 하는 의무를 갖고 있으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재난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올 들어 재난문자가 너무 빈발하다보니 이용자들의 민원이 통신사로 접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긴급 재난문자 같은 경우는 진동모드 설정 여부와 관계없이 큰 소리로 알림을 울리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손씻기나 마스크쓰기와 같은 일상적인 알림은 이용자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발송하도록 운영 규정을 세밀화해 이용자들의 불편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1

9일 오후 전남 담양 무정면 봉안리 마을에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주택과 차량 등이 매몰돼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8.9/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sther@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