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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법농단 재판에 현직 대법관 첫 증인출석…"의견서 전달받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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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전 차장 재판서 "불쾌했다"

"문건 한 번 봤지만 논리 와닿지 않아 더이상 안 봐"

뉴스1

이동원 대법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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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1·사법연수원 16기) 재판에 이동원 대법관이 증인으로 나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의 재판장 시절 관련 자료를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11일 임 전 차장 공판기일에 이 대법관을 증인신문했다. 현직 대법관이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2014년 12월 통진당 정당해산 결정 뒤 헌법재판소가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리자, 법원행정처가 나서 '국회의원의 지위존재 여부 판단권이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을 유도했다고 보고 있다.

2015년 11월 1심을 맡은 반정우 당시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로부터 의견서를 전달받고도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을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각하 판단을 했다.

헌재의 권위를 법원이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자 양 전 대법원장은 박병대 전 대법관과 함께 간부 회의를 열고, 이후 2016년 3월 당시 서울고법 행정5부 재판장으로서 통진당 사건을 맡고 있던 이 대법관에게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대법관은 2016년 3월 이 전 기조실장을 만났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만나자고 해 단둘이 식사를 했는데 뭔가 말할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식사자리에서 이 전 실장이 통진당 사건 이야기를 하자 "기분이 좋진 않았다"고 소회했다. 이 대법관은 "'잘 검토해보겠다'정도는 이야기 했을 수도 있지만, 판사가 사건에 대해 제3자로부터 접근해오면 긴장하고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며 "그 정도로 (말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할 순 없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법원행정처가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 TF를 구성한 사실을 법원 자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관련 조사 결과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건넨 10페이지 내외의 문건에는 국회의원 지위 확인이 사법 판단 대상인지,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고 할 경우 국회의원 지위가 있다고 볼 것인지, 그에 따른 장단점 등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이 문건을 건넨 것에 대해 이 대법관은 "기분이 나빴다"며 "재판사항인데 이런 말하기 조심스럽고 재판부 입장에선 불쾌하다"고 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을 만난 날에 변론기일을 지정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 대법관은 "기일지정한 건 맞지만 이 전 실장을 만난 것하곤 상관없다. 본안판단을 어떻게 검토해서 할 것인지 고민하다 사실 좀 기일지정이 늦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재판은 외부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특히 행정처는 오해받을 소지가 많다"며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 자료를 물어볼 수는 있지만,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 의해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 이후에도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자신에게 "통진당 재판이 있는데 고생 좀 하시겠네"라고 이야기를 건넸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저보다 1년 후배인데 선배 사건에 대해 어쩌고 하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며 "이 전 실장의 경우 기분이 덜 나빴다. 이규진은 양형하는 사람인데 그러니 기분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전달받은 문건을) 안 읽어도 되지만 제가 법률적 문제에 봉착하지 않았냐. 헌법 교과서에도 깊이 있는 언급도 없고 선례도 없어, 그 부분 언급이 있으면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겠구나, 행정처에서 검토했으면 참고할 만한 게 있을까 해 보긴 봤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했을텐데 그걸 읽어 면목이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역구의 국민대표성, 해산 후에 보인 모습 등을 검토한 내용이 있었지만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며 "와닿아야 자기 걸로 받아들이는데 나머지 논거들도 와닿지 않아 한 번 읽고 더 이상 안 봤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신문이 끝난 후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재판은 필요한 일이고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 공방이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잘 마무리 해 좋은 재판으로 기억 됐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시 이 대법관과 같은 재판부 소속으로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부심을 맡았던 이인석 대전고법 고법판사도 증인으로 나와 행정처가 이 대법관에게 문건을 건넨 사실을 알지 못했고, 검찰 참고인 조사 때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 대법관이 행정처에 자료 요청을 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이 고법판사는 "이 사건은 저희 재판부에서 굉장히 연구도 많이 하고 고민을 많이 한 사건 중 하나"라며 "통진당 판결은 필요한 모든 노력을 거쳐 합의해 한 판결이다. 재판부에선 행정처에 의견을 물은 사실이 없고 독립돼서 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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