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대법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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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57ㆍ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임종헌(61ㆍ17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다. 이 대법관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은) 재판 거래가 아니라는 소신은 동일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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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맡은 통진당 항소심
이 대법관은 2016년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 부장판사로 부임하며 이른바 ‘통진당 소송’ 항소심의 재판장이 된다. 이 소송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기로 결정한 이후 소속 국회의원들이 의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낸 소송이다.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릴 때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함께 내렸다. 하지만 전 통진당 의원들은 의원직 상실 부분에 한해선 헌재가 아닌 법원이 판단해달라며 소를 제기했다.
1심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헌재가 이미 의원직 상실 결정을 했으니 법원이 다시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이 대법관은 1심과 달리 의원직 상실 소송 자체는 법원에서 판단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재판을 열었다. 이후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선동죄로 징역형을 받아 이미 의원직을 잃었고, 다른 통진당 의원들은 헌재 결정 효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며 통진당 의원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기각은 1심의 각하와 달리 소송 요건이 충족돼 재판이 열린 뒤 재판부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1심과 결론은 똑같았지만 의원직 상실과 관련해 헌재의 결정 이후에도 법원에게 판단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권한 확대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난해 9월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던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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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민걸이 문건 전달해 재판개입"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의중을 항소심 재판부에 전달해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대법관이 1심과 결론은 같으면서도, 각하가 아닌 기각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증거로 이 대법관이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만나 이 대법관의 판결과 유사한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통진당 문건을 받은 사실을 제시했다. 해당 문건에는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 이후 소속 의원 지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이 잘 정리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날 재판에서 이 대법관은 2016년 2월~3월쯤 당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식사자리에서 따로 만난 것은 인정했다. 이 대법관에 따르면 두 사람은 ‘35년 된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단짝으로 지냈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며 허물없이 지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당시 문건을 건네며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이 있을 때 의원 지위를 상실하는지에 대해 법원에 아예 재판권이 없다고 하는 건 이상하지 않으냐”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으로부터 받은 문건을 전혀 판결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런 문건을 받고 심적 부담감을 느꼈냐는 질문에는 “심적 부담감은 없다. 재판은 법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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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때도 받은 질문… “재판 거래 아니라는 소신, 그렇다”
이동원 당시 대법관 후보자가 2018년 7월 25일 열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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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법관이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질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법관은 2018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는 “옛 통진당 인사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이 있다고 지적한다”고 이 대법관에게 물었다. 이 대법관은 “재판 거래가 아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 앞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날 증인 신문에서도 그날의 기억이 소환됐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2018년 청문회 때 ‘재판 거래가 아니다’라고 말한 소신은 지금도 동일한가”라고 물었다. 이 대법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대법관은 당시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도 자랑스러운 판결로 문제가 된 정당 해산 소송을 꼽았다. 그 이유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대법관은 “선례가 없는 사건이었고, 법원과 헌재의 심판권에 대해 제가 가진 생각을 정리해 고민하고 쓴 판결”이라고 답했다.
이날 증인 신문을 마친 뒤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증인석에 앉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뒤이어 "형사 재판을 해 본 입장에서 누구든지 증거 공방이 있으면 (증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며 "재판부가 고생하겠다"고 말한 뒤 인사를 하고 법정을 떠났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ang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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