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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물난리 와중에… 외신기자 불러 '페트병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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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對北 살포 반대 주민들만 섭외해 인터뷰 진행시켜

통일부가 전국에서 홍수 피해가 속출하는 와중에 서울 주재 외신 기자 40여 명을 데리고 '페트병 해상 살포 현장'을 방문하는 '접경지역 투어'를 진행했다. 또 현장에서 대북 페트병 살포에 반대해온 주민들만 섭외해 '지역 주민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일부가 대북 전단·페트병 살포 단체들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탈북·인권단체들에 대해 이례적인 사무검사를 실시한 것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을 의식해 '관제 여론전'에 나섰다는 말이 나왔다.

조선일보

외신 기자들이 강화군 석모도에서 통일부가 섭외한 주민들로부터 쌀 넣은 페트병 살포가 환경과 지역 안보에 피해를 준다는 설명을 듣고 있다. /외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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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자들은 이날 오전 통일부가 제공한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인천 강화군 석모도로 이동했다. 일부 탈북 단체가 쌀을 넣은 페트병을 살포한 지점을 둘러보고 현지 주민 3명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북한 취재 경험이 있는 한 외신기자는 "북한 당국이 체제 선전을 위해 동선과 인터뷰를 미리 짜놓고 외신 프레스 투어를 진행하던 게 연상됐다"고 했다.

이날 투어에 참석한 한 일본 언론사 기자는 "섬 주민들을 인터뷰했는데 하나같이 페트병 방류가 어업에 피해를 미친다며 살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미국 신문사 기자는 "(통일부는) 참석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하는데 약속이나 한 듯 환경오염과 긴장 조성을 거론하더라"고 했다. 또 다른 외신 기자는 "서울에서 몇 년째 근무 중이지만 통일부의 외신 기자 대상 투어는 처음"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신 기자는 "본인들의 요청이 없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미리 섭외한 주민들이었다"고 했다.

이날 외신 기자들을 인솔한 통일부 인도협력국 관계자는 오찬 간담회에서 페트병 살포 중단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인도협력국은 최근 탈북민 단체 2곳에 대한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통일부 등록 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 및 등록 요건 점검을 실시한 부서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통일부가 북한 인권 운동을 탄압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홍수로 전국이 신음하는 와중에 외신 기자들만 콕 집어 이례적인 투어 행사를 마련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외신들도 졸(卒)로 보고 길들이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편 북한 인권 단체 30여 곳은 이날 통일부의 이례적 사무검사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대위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정부에 권고한 대로 통일부에 사무검사 중단을 요구한다"고 했다.

[김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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