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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기후·에너지·식량…‘지금 이대로’ 물려주기엔 미안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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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미래연구원, 한국인 선호미래 공론조사

자원 절약해 물려주는 ‘보존분배’ 첫손에

기후변화 등 환경 ‘가장 중요한 문제’ 인식

“가장 싫은 건 지금 사회 계속되는 미래”


한겨레

국회미래연구원이 실시한 선호미래 공론조사 현장.


2020년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바라고 있을까? 안정과 변화, 개인과 공동체, 성장과 분배 가치 사이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한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사회 가치와, 선호하는 미래상을 종합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전국에 거주하는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50년 선호미래 숙의토론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환경 문제를 가장 중요한 미래사회 이슈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듯, 가장 선호하는 미래상도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원을 잘 보존해 미래세대가 쓸 수 있게 하는 `보존분배' 사회로 조사됐다.

국민들은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과 같은 성장·경쟁 중심 사회(안정성장)가 미래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미래를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 1위로 꼽았다.

권역별, 연령별 인구 분포에 맞춰 선별한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선호미래를 공론조사 방식으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론조사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려준 뒤 의견을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한겨레

한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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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노동 등 일자리 문제, 근소한 차이로 2위


연구원은 참가자들의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사전에 3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선호 가치들을 확인하고, 이 가치들의 분포에 맞춰 조사 참여단을 구성했다. 연구원이 확인한 한국인의 선호 가치는 급진성장, 안정성장, 보존분배, 현존분배 네 가지로 나뉜다. 급진성장은 기술 혁신과 개인, 성장, 도전, 변화, 미래 가치를 중심에 둔다. 안정성장은 현재를 중심으로 좀 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반면 보존분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술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공동체, 분배, 형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존분배는 이 가치를 미래가 아닌 현재 세대 중심으로 접근하는 사회다.

조사 참가자들은 미래 이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후, 에너지, 오염, 식량 등 자연환경(59.6%)을 꼽았다. 20대가 일자리 문제를 첫손에 꼽은 것 말고는 나머지 연령대 모두 자연환경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선택했다. 이어 근소한 차이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복지, 노동과 관련한 일자리 문제(51.4%)가 2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주거(24.3%), 건강(22.3%), 가족(20.3%), 정치(12.2%), 안보(9.4) 등은 큰 차이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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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 위해 현재 욕망 억제하는 사회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는 보존분배(43%) 사회였다. 현존분배(25.9%) 급진성장(20.7%), 안정성장(9.4%) 세 가지 미래상은 선호도에서 보존분배 사회와 큰 차이를 보였다.

보존분배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일까? 개인보다 공동체, 성장보다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고, 고부담·고복지, 신재생에너지, 유연한 가족 개념,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다. 국민들은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빈자가 공존하고 노동시장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사회를 원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래세대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현재 세대의 욕망을 억제하는 사회다. 20대에서 이 미래를 선호하는 비율(53.2%)이 가장 높았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은 기후변화 적극 대응, 느슨한 가족 관계, 다양한 가치가 보존분배 사회의 3가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보존분배 사회를 선호하는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환경이었다. 격차 완화도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연구원은 "주목할 점은 이 미래 지지자들에게 격차는 도시-농촌, 대기업-중소기업, 고소득층-저소득층 같은 현실 격차뿐 아니라 미래세대와 현재세대의 격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미래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4가지 미래 중 3위(17.7%)에 그쳤다. 국민들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미래는 안정성장 사회다(43.4%). 대도시 중심, 중단없는 성장 목표, 효율 중시, 미온적인 기후변화 대응 등 지금의 사회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는 미래다. 하지만 셋 중 하나는 이런 미래사회를 가장 피하고 싶다고 답변했다(34.9%). 네 가지 미래 중 회피미래 1위다. 지역간, 계층간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확대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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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이 별도로 실시한 65명의 전문가 집단 조사에서도 일반 국민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의 보존분배 선호비율(63.1%)은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의 사회 기조가 이어지는 안정성장 미래를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38/5%) 가장 피하고 싶은(43.1%) 미래’로 꼽은 것도 일반 국민과 같았다.

이번 조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이뤄졌지만, 조사 결과는 지금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 확산의 근본원인이 환경파괴와 도시확대로 지적되는 상황에서, 자연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보존분배 사회가 최고의 선호미래로 꼽힌 것은 의미있는 결과라고 연구원은 평가했다. 박성원 그룹장은 "국민은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국민들은 보존분배 사회의 등장을 더욱 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한국인 선호미래 공론조사 분임토의 현장. 국회미래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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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위인 현존분배, 붕괴 후의 새출발과 비슷


선호미래 2위인 현존분배 사회가 60대에선 1위(39.7%)를 차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현존분배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경제 위기를 맞아 지역별, 공동체별로 자생력을 추구하는 사회다. 사회 시스템 붕괴 후에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현재 인구 분포에선 20~30대보다 40~60대가 더 많다”며 “인구 구성 비율을 고려해 투표로 선호미래를 결정한다면 보존분배 미래를 기본으로 현존분배 미래의 특징을 담는 제3의 미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자연환경 보존사회를 기반으로 분배와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다.

한국인의 선호미래 공론조사는 서울권, 대전권, 부산권 3개 권역별로 나눠 사전 온라인 숙의, 사전 설문 조사, 7개 미래 이슈 토론, 4가지 선호미래상 논의, 전문가 질의 응답, 사후 설문 조사 순으로 진행했다.





전문가 그룹이 제안한 보존분배 사회 정책 5가지

국회미래연구원의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 집단은 보존분배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다섯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국민청원제 개선,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직접민주주의 강화다. 둘째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세제 정책 강화와 고부담 고복지 사회로의 전환이다. 셋째는 의식주 생활에서 공용 주거 주택 공급 확대, 지방 대중교통망 강화와 교육·의료 서비스의 지방 연계, 에너지 자급 마을 확대 등이다. 넷째는 사회 변화를 반영한 가족 개념의 재구성과 새로운 유형의 가족에 대한 지원 제도, 개인의 고립 방지를 위한 사회 프로그램 도입이다. 다섯째는 성 정체성, 맞춤형 아기, 트랜스 휴먼 등 새로운 가치관과 기술을 반영한 규제 기준 마련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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