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정후와 반즈가 보여준 슬라이딩의 미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1일 키움-한화전

이정후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재치있는 슬라이딩으로 2루 안착

반즈는 번개같은 슬라이딩으로 결승득점

조선일보

이정후가 재치있는 슬라이딩으로 하주석의 태그를 피하는 장면. /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한화의 시즌 7차전 3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이정후가 우익수 앞 안타를 쳤다. 보통의 단타성 코스였지만 이정후는 과감히 2루로 내달렸다.

우익수 브랜던 반즈가 2루로 공을 뿌렸고, 이 공을 유격수 하주석이 받았다. 이 시점에서 이정후는 아직 2루로 오지 못했다. 넉넉히 아웃이 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정후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면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오른손을 쭉 내미는 동시에 왼팔을 들면서 하주석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했다.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한화 요청으로 비디오 판독에 들어갔다. 판독 장면이 전광판에 나오자 묘기에 가까운 이정후의 슬라이딩 장면에 키움 팬은 물론 한화 팬들마저 탄성을 터뜨렸다.

조선일보

이정후가 재치있는 슬라이딩으로 하주석의 태그를 피하는 장면. /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드 팬들은 그 장면을 보며 자연스레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을 떠올렸다. 이종범은 자타가 공인하는 슬라이딩의 귀재였다. 2006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슬라이딩이 아직도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종범은 당시 류현진의 공을 때린 뒤 2루로 달렸다. 타이밍은 아웃이었다. 하지만 이종범은 오른손을 쭉 뻗은 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다가 멈칫하며 오른손을 들며 태그를 피했다. 이 동작에 한상훈이 속으면서 중심을 잃었고, 그 틈을 파고든 이종범은 오른손으로 여유 있게 베이스를 찍었다. 마치 자유형을 하는 듯한 동작 같았다.

14년 뒤 아들이 이 장면을 비슷하게 재현한 것이다. ‘바람의 아들’이라 불렸던 이종범은 도루왕만 네 차례 차지할 정도로 빠른 발을 자랑했다. 역대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인 84도루(1994시즌)는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꼽힌다.

이정후가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해도 그를 잘 모르는 팬들은 막연하게 아버지를 닮아 도루에 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른 유형의 선수였다. 주력 자체가 평균을 살짝 넘기는 수준인 이정후는 매 시즌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했지만 최다가 13개(2019시즌)일 정도로 도루를 자주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정후의 주루 센스는 아버지를 쏙 빼닮은 듯 하다. 11일 한화전 슬라이딩에서 보여준 동작은 아버지를 절로 떠올리게 했다. 이정후는 스탯티즈의 RAA주루(주루에서의 평균 대비 득점 생산)에서 1.99로 터커(2.24)에 이어 2위를 달린다.

조선일보

반즈가 포수 뒤를 파고드는 슬라이딩으로 결승득점을 뽑아내는 장면. /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한화도 결정적인 슬라이딩 장면을 선보였다. 5-5로 맞선 연장 12회초 임종찬의 안타에 2루 주자 반즈는 전력을 다해 홈으로 질주했다. 보살 능력이 뛰어난 우익수 이정후가 빠르게 공을 던졌고, 공은 정확하게 포수 주효상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반즈가 빠르게 포수 뒤로 파고들며 왼팔을 쭉 뻗어 홈을 터치했다. 주효상이 몸을 틀어 태그할 여지를 주지 않은 번개같은 슬라이딩이었다. 이 득점은 한화의 결승점이 됐다. 이날 2회초 시즌 2호 홈런을 신고한 반즈는 결정적인 순간 주루로 공헌하며 팀 승리에 앞장섰다. 이날 키움-한화전은 슬라이딩의 진수를 맛본 경기가 됐다.

[장민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