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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늑대전사 외교' 중국, 속도조절할까…외교가에 자성론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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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통 "중국 외교공동체 내부에 일부 이견 존재…중국 고립 우려"

중국 외교사령탑 양제츠·왕이의 미국 향한 유화적 발언도 주목

전문가 "힘이라는 하드파워와 지혜·전략 등 소프트파워 결합 필요"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중국이 이른바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노선에 수정을 가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전랑 외교는 중국의 인기 영화 제목인 '전랑(戰狼·늑대 전사라는 뜻)'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을 지칭하는 용어다.

'전랑'은 2015년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홍보를 위해 만든 애국주의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2편이 제작됐다.

연합뉴스

중국의 대표적인 '늑대 전사' 외교관인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
AP통신 발행사진 캡처[재배포 및 DB 금지]



줄거리는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준군사조직인 인민무장경찰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1편에서는 미국 네이비실 출신의 악당들을, 2편에서는 납치범들을 각각 물리치는 내용이다. '전랑'은 영어로는 '울프 워리어(Wolf Warrior)'로, 우리말로는 '늑대 전사'로 옮길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외교관들은 신중과 절제를 덕목으로 삼았다.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시대의 외교방침인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견지한 것이다. 도광양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몽'(中國夢)을 내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중국은 더는 도광양회를 외교의 덕목으로 삼지 않게 됐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국과의 무역·기술전쟁에 이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문제 등으로 중국과 서방국가들과의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의 외교관들은 외교무대에서 강경한 어조로 애국주의적 주장을 펼쳤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이 궁지에 몰리자 중국 외교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트위터를 활용해 미국과 일부 서방국가들을 거침없이 공격하는 '트위터 전쟁'에 참전했다.

그러자 서방의 외교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이러한 중국 외교관들을 영화 '전랑'에 나오는 주인공에 빗대 '전랑'으로, 이들의 외교 접근법을 '전랑 외교'로 칭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전랑' 외교관, 즉 '늑대 전사' 외교관은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다.

그는 지난 3월 중순 "미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에 가져왔을 수도 있다"고 도발적인 트윗을 날리면서 '코로나19 미국 음모론'을 제기했다.

루샤예(盧沙野)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도 트위터 전쟁에 참전한 늑대 전사였다.

그는 지난 4월 프랑스가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자 주불 중국대사관 홈페이지에 '프랑스가 나이 든 사람들을 집에서 죽게 만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프랑스 측은 즉각 그를 초치해 항의했다.

중국 외교관들의 '늑대전사 외교'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외교부에 중국의 이익 수호를 위해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표시하고 '투쟁 의식을 고취하고 투쟁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외교관들은 자국에 대한 비판에 보다 직접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트위터를 외교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 외교관들은 신장(新疆)위구르(웨이우얼) 자치구 내 '재교육 수용소',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대만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트위터를 활용해 자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외교관들의 호전적인 '전랑 외교'의 부정적인 측면이 노출되자 중국 외교가 내부에서도 일부 자성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13일 "중국이 전랑 외교를 억제해야 할 때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소개했다.

중국 정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전랑 외교에 대해 중국 외교 공동체 내부에 일부 이견이 있다면서 이 접근법이 중국을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멀어지게 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는 여전히 '투쟁 정신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전랑 외교에 대한 자성론도 일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외교관은 냉철해야 한다"면서 "중립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빈정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상대를 경멸하는 표현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의 갈등 상황에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있어 경험이 풍부하고 세련된 외교관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중 관계에서도 추가적인 오해를 피하고 완전한 파국을 막기 위해 미국과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교가 내부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楊潔?)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최근 잇따라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다.

양 정치국원은 지난 7일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를 향하며, 확고히 미·중 관계를 지키고 안정화해야 한다'는 장문의 글을 통해 "미국의 소수 정치인이 사익을 위해 미·중 관계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도록 둬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중국 학계나 자문그룹 내부에서도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중국을 고립시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국무원 고문인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지난 5월 온라인 토론회에서 중국 외교관들의 공격적인 언급에 대해 국제 문제의 복잡성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공격적인 언급이) 너무나 성급하게, 너무나 빨리, 너무 큰 톤으로 전달됐다"고 비판했다.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도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스스로 힘과 약점에 대해 적절하게 평가해야 한다"면서 "가장 큰 위험은 한 두 가지의 특별한 화약고나 정책 차원의 탈동조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 전략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피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선 힘이라는 하드파워와 지혜와 전략이라는 소프트 파워를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jj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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