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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능력보다 '1주택'이 공직 기준, 부동산 정치가 만든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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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엊그제 신임 수석비서관 인사를 발표하면서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이들이 '사실상 1주택자'라고 강조했다. "국민소통·사회 수석이 원래 집 두 채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한 채는 매매 계약을 체결해 지금 처분 중"이라고 했다. 수석직을 맡는 조건으로 먼저 다주택을 처분토록 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최근 장차관급 임명 인사들도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다. 공직 사회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1주택이 공직의 새 기준이 될 것처럼 말했다. 공직자의 자질로 능력·도덕성보다 집 몇 채냐가 더 부각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 차원에서 다주택을 처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투기 목적이 없는 합법적 다주택자까지 원천적으로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일뿐더러 자유민주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안 그래도 좁은 현 정권 인재풀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능력 떨어지는 1주택자'가 고위직을 차지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1주택 공직 기준'은 주택정책 실패를 어떻게든 가려보기 위해 내놓은 또 하나의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은 정권이 모든 다주택자를 '악(惡)'으로 몰다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청와대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 지난해 말 고위 공직자들에게 집 한 채만 남기고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여당은 총선 출마자들에게 '다주택 처분 서약서'를 받았다. 아무리 '인기 영합 쇼'라도 국민 앞에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땠나. 공직자들은 어떻게든 집을 안 팔고 버티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처분하다 공분만 키웠다. 집 처분 지시를 내린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2주택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락가락하다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무주택자가 됐다. 이번에 교체된 민정수석은 한 채를 처분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시세보다 한참 높은 가격을 불러 '파는 시늉'만 낸 것이었다. 시중에는 '역시 직(職)보다 집이 우선'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 정권은 공급을 늘려달라는 시장의 요구는 무시하고 오로지 '다주택자 투기 세력이 문제'라는 편 가르기로 일관하다 집값은 못 잡고 애꿎은 사람들에게 세금 폭탄만 안겼다. 그러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1주택 공직 기준' 같은 엉뚱한 발상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부동산 정치'의 폐해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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