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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실형 받고 법정구속 피한 손혜원···10분의 1 확률 뚫은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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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남 목포 부동산 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손혜원 전 국회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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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아니한다.”

1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박성규 부장판사는 손혜원 전 의원의 선고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기소된 손 전 의원에 대해 박 부장판사는 집행유예 없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 없으면 구속해야”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 법정구속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는 “실형 선고 후 법정구속을 안 하는 경우는 10건 중에 1건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며 “법원이 공직자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음에도 구속을 하지 않은 건 특혜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손 전 의원이 항소 의사를 밝힘에 따라 항소심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된다.

실제로 대법원의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는 규정이 명시돼있다. 불구속 상태의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할 때는 법정구속이 원칙인 셈이다. 그러나 재판 실무에서 이러한 예규가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민지환 변호사(법무법인 YK)는 “범행 정도가 경미하거나 상대방과 원활한 합의 진행이 필요할 경우 판사 재량에 따라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논란 이어진 법정구속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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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호송차에 탑승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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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구속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해 1월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해 1심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관여한 혐의였다. 그러나 당시 김 지사의 법정구속을 둘러싸고 ‘정치적 판결’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2016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법원은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정구속 기준이 판사마다 달라 ‘복불복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정구속은 형량의 경중과도 무관하게 이뤄졌다.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손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법정구속을 면했다. 이후 진행된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는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찰국장은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법정구속 됐다. 그러나 안 전 검찰국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예규에 명시된 ‘특별한 사정’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비판과 함께 예규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



반면 법정구속 원칙을 규정한 법원 예규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도 있다. 법정구속 여부의 근거가 형사소송법이 아닌 법률보다 하위 개념인 예규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주거 불명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라는 3가지 사유가 있을 때만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판사 출신의 서기호 변호사(전 정의당 국회의원)는 “2003년에 제정된 예규로 인해 실형은 곧 법정구속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굳어져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변질됐다”며 “예규를 폐지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2심, 3심에서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수석에게 실형 선고 후 구속을 하지 않았던 1심 법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을 다퉈보는 게 타당하고 구속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고 사유를 밝혔다.



“법정구속 기준 다시 마련해야”



일각에서는 판사마다 법정구속 원칙이 달라지는 현 상황이 사법 불신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진녕 변호사는 “예규에 명시된 ‘특별한 사정’에 대한 판단이 판사마다 제각기 달라 매번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며 “양형기준을 만든 것처럼 실형 선고 후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사례들을 모아 법정구속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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