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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책과 미래] 새로운 인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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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혜가 오직 고통의 형식을 띤다는 것은 얼마나 잔혹한가. 사랑할 때는 당신을 알지 못했는데, 사랑의 고통을 통해서만 당신을 깨닫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가. 예수는 스스로 십자가를 짐으로써 구원이 수난 속에 있음을 보여줬고, 공자는 자기를 극복하는 꾸준한 실천만이 인간을 군자답게 한다고 말했다. 예부터 이것이 인간의 자부다. 그러나 극도의 고난을 당했는데도 인간이 아무것도 못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패닉에 빠져 야만의 노예로 전락한다. 사회는 흩어지며, 문명은 무너진다. 아포칼립스, 파멸과 종말의 시대가 닥쳐오는 것이다.

"감염병 덕분에 우리가 더 현명해지리라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팬데믹 패닉'(북하우스 펴냄)에서 슬라보이 지제크는 선언한다. 코로나19의 팬데믹에서 인간은 한 줌의 지혜라도 얻었을까. 부풀어오른 허파와 새빨간 입술로 자신을 분칠하는 자존망대 말고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인간은 "심오한 차원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지제크의 말이 옳다. 당장의 이익에 혀를 내미는 군상들한테 지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백신 등을 통해 이 위기를 넘긴다 할지라도 새로운 감염병이 "더 위험한 형태"로 출현할 것이다. 원인은 "지구 생명체를 착취하고 파괴하는" 우리들 자체다. 인간이 인간을 침략했다. 더욱이 유례없는 장마는 '기후 위기'라는 더 무서운 재난을 눈앞에 드러냈다. '가뭄, 폭염, 태풍 등'도 닥칠 것이다. 바이러스도, 날씨도 인간의 위대함 따위는 모른다. 조건이 되면 발현할 뿐이다. 지구에서 삶의 서사를 다시 쓸 의무를 진 사람은 인간뿐이다.

지제크에 따르면 우리는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무너진 삶의 잔해를 모아서 새로운 일상을 생산하는 길과 조짐이 이미 선명한 야만에 빠지는 길이다. 그는 우리 욕망의 좌표를 조정함으로써 인류를 '자기 파괴'에서 구하려는 노력만이 '새로운 인류의 창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주변을 보라. 한 사람이라도 생활을 바꾼 사람이 있는지. 소돔은 운명을 알았지만 멸망했다. 슬픈 일이다.

팬데믹은 우리 삶의 진짜 가치를 드러냈다. '노동'이다. 우리 일상을 지속시킨 '언택트'는 말조차 무색하게 힘들고 소모적인 노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로켓배송'은 택배 노동자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신선식품'은 이주 노동자 없이 생산될 수 없다. 접촉이 사라진 게 아니다. 누군가가 위험을 감당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새로운 인간은 여기에서 출현할지 모른다. 어제는 '택배 없는 날'이었다. 많은 시민이 여기에 동참했다. 아직, 미래가 고갈된 것은 아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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