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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오태식의 알바트로스] 선택받지 못한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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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양심에 걸리는 자그마한 일에도 번민하던 젊은 시절에는 윤동주 님의 서시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지만 그런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삶의 더께가 쌓인 중년의 나이에는 미국의 대표 서정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면 괜히 가슴 먹먹해진다. 시에서 얘기하듯 인간은 누구나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결정을 두고 후회도 하고 만족도 하게 된다.

여러 면에서 골프는 인생과 닮았다고 한다. 누군가의 한 많은 인생에서처럼 골프란 스포츠에서도 심한 굴곡을 경험하게 된다.

얼마 전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는 골프의 쓴맛을 제대로 봤다. 한때 각종 최연소 신기록 타이틀을 쌓아 가며 세계 1위까지 올랐던 리디아 고다. 어린 나이에 이미 가장 높은 곳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도 슬럼프는 피해가지 못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지 2년도 넘은 그에게 절호의 우승 기회가 찾아 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최종일 6홀을 남겼을 때 재미동포 대니엘 강에게 5타나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리디아 고는 그 기회를 끝내 살리지 못했다. 경기 후 그는 "내가 생각한 결과가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우승할 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두 눈 가득 담긴 눈물을 참아가며 인터뷰하는 그의 모습에 골프팬들은 진한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그는 더블보기를 범한 마지막 홀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직접 그린을 노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때 다른 골프채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리디아 고는 이 고난을 겪기 한 달 전쯤 LPGA 홈페이지에 자신의 '1인칭 스토리'를 공개한 바 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LPGA 최연소 신기록을 써나가기 시작한 '15세의 리디아 고'에게 보낸 편지다. 그 편지에서 리디아 고는 이렇게 썼다.

"우승이란 게 일상적이고 거의 자동적으로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야. 네가 세운 모든 최초와 최연소 기록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수 있어. 하지만 쉽다고 착각하지 마. 한순간이라도 그게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지 마."

그는 '15세 리디아 고'에게 더 큰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 것을 주문했다. "멋진 일이 너무나 많이 생길 거야. 즐거운 추억도 있고 네가 눈물을 흘릴 만큼 상처 입게 될 일도 있어. 그 모든 걸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나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끝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어디에선가/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프로스트의 시처럼 그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으면 분명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도 인생이란 긴 드라마의 한 막일 뿐이다. 유명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오태식 스포츠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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