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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상사는 이야기] 광복절과 흙의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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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늘은 75주년 광복절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광복절 환희의 노래에서 흙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1905년 11월 17일 을씨년스러운 날 체결된 을사조약과 1910년 8월 22일 경술년 병합조약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35년간 일제에 핍박받던 우리 선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광복절은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 패망으로 암흑시대 식민지가 빛을 되찾은 날이다. 우리는 광복 후 민족상쟁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70년 만에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꽃피워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광복절 아침에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작곡한 5번 교향곡 '한국'을 듣는다. 1991년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위촉한 교향곡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슬픈 역사를 지닌 폴란드 출신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는 한국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슬픈 멜로디와 한국 편종을 사용한 장엄한 교향곡으로 동병상련의 한국인을 위로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중국에 망명 중이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외교적으로 승인한 나라는 중국도 미국도 아닌 영국에 망명 중인 폴란드임시정부가 유일했다. 우리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외톨이 신세였다. 1943년 11월 23일 카이로 미·중 정상회담에서 장개석(장제스) 총통은 "종전 후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대만, 만주, 조선을 전쟁 전 체제로 복원해 중국에 되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대만과 만주의 중국 반환은 동의하고 조선의 중국 반환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외교비사는 전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균형 잡힌 역사관에 힘입어 연합국 미·영·중 정상은 카이로선언에서 조선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해 적절한 시기에 조선을 자주독립시키기로 결의한다.

우리는 왜 나라를 빼앗겼는가? 망국기 역사를 회고한다. 조선조에 나라를 지키는 병역은 상민과 노비들 몫이고 왕실, 양반, 권문세도가 자제는 병역의무 없이 부귀와 권세만 누리려고 했다. 지도층이 앞장서 온 국민이 단결해 나라를 지키는 상무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로마제국은 초기에 귀족과 평민 집안 남자만 장병으로 징집했다는데 우리와 대비된다.

풍전등화의 국가 위기에도 성리학에 빠져 원리주의적 명분론 당쟁으로 지새우고 선진문명 도입에는 소홀했던 은둔 왕국이었다. 중화를 흠모해 '소중화'를 자랑하며 문신은 무신을 하대했다. 1907년 8월 한일신협약 직후 일본이 해산한 대한제국 군대는 중앙에 4000명, 지방에 4800명 규모였다. 세종 원년 1419년 6월 19일 이종무 도체찰사가 병선 227척, 1만7285명의 군인을 인솔해 대마도를 정벌할 때와 비교하면 구한말 군대는 너무나 초라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공인을 천대해 상공업 발전이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구한말 왕까지 나서 매관매직할 정도로 부패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국력의 뒷받침 없는 작은 군대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미·일·중·러 4대 강국 교차점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대륙세력이 몰락하고 해양세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1894~1895년 청일전쟁,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1905년 7월 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권익을 인정하는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조선의 약한 국력과 외교력이 자초한 망국이다. 한반도에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 미래 비전을 세워 국력을 키우고 사분오열된 사회의 통합이 시대적 소명이다. 온전한 광복은 자유와 휴머니티가 넘치는 통일국가의 완성이다. 한여름 밤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환희의 찬가'를 들어야겠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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