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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 탓 한국ㆍ일본인 구분 안 돼... 일제 토지 환수 첫발부터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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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 못 맺은 일본인 명의 토지환수 문제의 역사
역대 정부 과거사 문제 무관심과 행정력 부족도 한몫
한국일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남동 종묘 담장 옆에 위치한 일본인 토지 일부. 해당 토지는 현재 국유화 작업을 거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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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침탈됐던 국권을 되찾은 지 75년이 흐른 2020년.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은 이 강토에 36년 일제강점기가 남긴 토지수탈의 흔적들을 완벽하게 털어내지 못했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영토 곳곳의 등기부등본이나 토지대장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땅을 보유했던 일본인들이 버젓이 소유주로 기재돼 있다. 광복 이후 토지 문제를 정리할 때 국유화됐어야 마땅했던 '일본인 명의 토지'들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14일 조달청과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해방 후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인 명의 토지가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으로 환수되지 못했다. 2012년부터 조달청이 이 작업을 전담하면서 8년간 본격적인 국유화 작업이 진행됐음에도, 현재까지 환수되지 못한 일본인 명의 토지는 총 3,052필지에 달한다.

역대 정부 일본인 토지환수에 무관심


전문가들은 일본인 명의 토지를 75년 동안이나 제대로 환수하지 못한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대적으로 이뤄진 창씨개명 때문에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해방 직후에도 이런 정교한 작업을 추진할 행정력이 부족했으며 △역대 정부가 일제 잔재 청산 등 과거사 정리 문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 토지 환수 작업을 근본적으로 꼬이게 만든 배경은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모든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려 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이다. 1940년부터 시행된 창씨개명의 결과, 1941년 기준으로 한반도 전체 호적 428만 2,754호 중 322만 694호(81.5%)가 일본 이름을 사용했다. 이 결과 부동산 공적 장부에도 일본 이름이 쓰이게 돼, 광복 이후에도 장부만 봐서는 토지의 소유주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군정과 초기 한국 정부는 일본식 이름으로 된 공적장부상 실소유주를 추적해 한국인과 일본인을 분리해야 했다. 한국인의 것은 한국인에게 돌려주고, 창씨개명하기 전의 이름으로 대장에 기록해야 했다. 일본인의 것은 국가에 귀속시켜야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정치적 환경에서 이런 세밀한 작업은 불가능했고, 역대 정부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었다.

친일행위에 대한 청산이 부진했던 것도 이유가 됐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조미은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승만 정부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탓에 친일재산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인 명의 재산은 관심사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돈 문제도 있었다. 조달청 관계자는 "정부 수립 초기 국가가 재정마련을 목적으로 공적장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귀속 재산을 처분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 일본기업, 일본기관이 소유한 토지들은 광복 후 미군정법 등에 따라 한국에 귀속됐는데, 이 때 귀속 재산은 남한 국가 재산의 80%를 차지했다. 이 귀속 재산의 일부는 농지 개혁에 분배되거나 기업에 판매됐다.

친일재산조사위 해체되며 동력 떨어져


물론 이후 정부에서도 일본인 명의 재산을 국유화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졌다. 정부는 1985년 '1차 국유재산 권리보전조치'를 시작으로 누락된 일본인 명의 재산을 추적해 국유화했지만, 당시 조치는 일본인 명의 재산만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2006년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는 이전 정부 조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4글자 이름만이 포함됐는데, 재산조사위는 3글자 이름 중 일부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여기에 더해 재산조사위는 '일제강점기 재조선 일본인명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며, 일본인 재산 조사를 위한 핵심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일제시대 자료 1,028건을 통해 일본인 이름 26만9,595개를 파악함에 따라, 이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확인 절차가 명확한 근거에 따라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산조사위는 활동기간 연장이 불허되면서, 이 조사는 4년 만에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홍경선 전 재산조사위 전문위원은 "아직 일본인명 DB 제작을 위해 확인해야 했던 자료가 남아있는 등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이 중단돼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후 일본인 명의 재산 추적은 2012년부터 기획재정부의 위임을 받은 조달청이 전담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전문가들 "범정부차원 조사기구 필요"


현재 조사에도 한계는 있다. 지난해 5월 감사원은 특별감사를 통해 조달청이 △일본인명DB 검색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았고 △과거 재산조사위가 일본인 명의 재산으로 확정한 3,520필지를 조사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소유권 반환소송이 필요한 은닉의심재산 34필지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고 소송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일을 특정 정부기관에만 맡길 게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포함된 범정부 차원의 조사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위원은 "법률적 기술적 문제들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도 "공적장부 일본 이름 지우기 사업을 하기 위해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자료를 분석하는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과거사 문제는 정권을 떠나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문제인 만큼 민관이 합동으로 구성된 상설 기구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임수빈 인턴기자 subin71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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