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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코로나 청정국' 뉴질랜드 백일몽···숨어있던 그놈들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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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베트남·라오스에 다시 환자

'종식 선언' 100여일 만에 다시 봉쇄

조그만 틈도 파고드는 '잠행 바이러스'

"백신 나올 때까진 마스크가 최고 예방책"

'코로나 청정국'. 한동안 환자가 나오지 않았던 뉴질랜드‧베트남 등을 일컫던 말이다. 하지만 섣불렀다. 이들 지역에서도 약 100일 만에 지역사회 감염자가 다시 나왔다. 좀 잠잠해지는 듯했던 유럽에서도 재확산 조짐에 국경 문을 다시 닫는 나라가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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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뉴질랜드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진단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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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선 지난 11일(현지시간) 102일 만에 지역사회 감염자가 4명 나온 데 이어 13일과 14일에 각각 13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로써 뉴질랜드의 지역사회 감염자는 30명이 됐다.

지난달 25일 100일 만에 지역사회 감염자가 발생한 베트남에선 같은 달 31일 첫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이후 약 2주 만인 지난 14일 기준 누적 사망자는 21명이 됐다. 베트남은 이전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주목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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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베트남의 하노이 거리에서 반려견에 마쓰크를 씌운 시민이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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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예상을 뛰어넘는 끈질긴 코로나는 ‘청정국’들이 공들여 쌓은 방역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 마이클 툴 멜버른 버넷 연구소 교수는 BBC에 “조그만 틈이라도 생기면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틈 안으로 파고들어 급속히 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00일 동안이나 없었던 감염자가 갑자기 나오는 현상에 대해 “무증상 감염자나 주변 환경 어딘가에 숨어있던 이른바 ‘잠행 바이러스’들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즉, 바이러스(감염자)가 잠깐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방역을 철저히 해온 청정국들에서도 확진자가 다시 나오는 점은 코로나의 영악함과 함께 상황을 섣불리 낙관해선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다시 봉쇄 … '100일몽'이 되어버린 일상의 행복



지난 11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2일 정오부터 3일간 오클랜드 전역을 다시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오클랜드의 일가족 4명이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다. 이후 잇따라 발생한 26명의 확진자 대부분은 이들 일가족 4명과 연관이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14일 각료회의를 통해 오클랜드에 내려진 봉쇄령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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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클랜드를 재봉쇄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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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한 건 지난 6월 8일이다. 당시 5월 1일 이후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코로나19 환자가 회복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뉴질랜드를 “성공적으로 지역사회 전파를 종식한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봉쇄 조치와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아던 총리의 리더십 등이 방역 성공 비결로 꼽혔다. 뉴질랜드 시민들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팬데믹 이전의 생활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확진자가 나오면서 일상의 행복은 ‘100일몽’ 되어버렸다.

확진자가 나온 오클랜드에선 불안감에 생필품 사재기 조짐이 나타나고, 정치권에선 다음달 19일 예정된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망자 '0' 기적 베트남에선 사망자 21명 발생



베트남에선 이달 들어 하루 신규 확진자가 20~30명씩 발생하고 있다. 14일 기준 누적 확진자는 911명, 누적 사망자는 2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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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코로나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던 베트남에선 지난달 31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누적 사망자는 21명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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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당국은 지난달 25일 100일 만에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재확산 조짐을 보이는 관광도시 다낭을 무기한 봉쇄했다. 그동안 베트남의 방역 성공은 ‘기적’으로 불렸다. 중국과 국경이 접해있고, 인구가 약 9700만명이나 되는데도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였다. 발 빠르게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봉쇄 조치를 내리는 한편 공격적인 검사를 시행한 점이 성공 요인이었다.

라오스는 지난 6월 11일 동남아시아 최초로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102일 만에 확진자가 나왔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확진자는 라오스에서 근무하는 30대 한국 남성이다. 일본에서 한국을 경유해 라오스에 왔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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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봉쇄령을 내렸다. 지난 13일 수도 팀푸의 상점들이 문을 닫은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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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코로나19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부탄(인구 75만명)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후 처음으로 지난 11일 국가 봉쇄령을 내렸다. 최근 쿠웨이트에서 돌아온 27세 부탄 여성이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여러 차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3주간의 격리에서 해제됐으나 지난 10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가 확진 판정 직전까지 여러 곳을 여행하고 쇼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탄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앞서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던 싱가포르와 홍콩도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확진자가 다시 늘었다. 한국 역시 확진자가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다가 14일 0시 기준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해외유입 18명, 지역감염 85명으로 총 103명 발생했다. 지역사회 감염으로 환자가 이렇게 많이 나온 건 지난 4월 1일(101명) 이후 135일 만이다.



무증상, 변종 등 다양한 원인 추정 … "백신·마스크만이 방법"



코로나 청정국들에서 재확산이 조짐이 나타나는 이유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추정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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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 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기 위해 늘어선 자동차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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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기침‧발열 등의 증상을 보이지 않는 ‘무증상 감염자’다. 지역 감염 사례가 보고되지 않을 동안 무증상 환자들로부터 지역사회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것이다. 한국 방역 당국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의 20~30%가 확진 당시 무증상이었다. 앞서 해외에선 무증상 감염자가 확진자의 8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코로나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등과 같은 이전 감염병보다 방역이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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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식당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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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어즐리 시드니대 전염병 부문 교수는 "100일 만에 첫 확진자가 나오기 전 몇 주간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낭에서 전파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응우옌 타인 롱 베트남 보건부 장관도 지난 4일 "보건부는 역학조사와 전문가 의견 등을 참고해 지난 7월 초나 중순에 국내 감염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보건 당국이 파악하지 못했을 뿐 바이러스가 조용히 전파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변종 바이러스나,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밀입국자들이 재확산의 원인일 수 있다고도 추정했다.

뉴질랜드 보건 당국은 냉동 화물을 통한 감염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102일 만에 발생한 확진자 4명 중 한 명이 수입한 냉동 화물 물류센터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온도가 낮을수록 생존 기간이 길어진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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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후보 물질. 전문가들은 백신이 코로나 종식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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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로나 감염자가 100일 만에도 다시 나오는 점으로 볼 때 결국 진정한 코로나 종식은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이 나와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또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이른바 ‘마스크 집단 면역’을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우주 교수는 “자신을 포함한 누가 무증상 감염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해야 한다”면서 “백신 접종률이 95% 이상일 때 집단 면역이 형성되듯 국민 95% 이상이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가 마스크 안 쓴 사람을 찾아내 전파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선 적극적인 백신 확보를 포함한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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