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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그래도 나는 홍콩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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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홍콩의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7월 1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많은 사람이 홍콩을 떠났다. 해외 이민에 필요한 무범죄 기록 증명서인 ‘양민증’ 발급 건수는 6월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에이미(葉家文·34)는 ‘남은 사람’이다. 그를 통해 현지 상황을 들었다. 지난 7월 2일부터 8월 11일까지 그가 기록한 내용과 메신저로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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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이 7월 1일 도심에서 열린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기자를 포함한 시민들에게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며 시위대 해산에 나서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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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오전 7시. 에이미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는 홍콩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적힌 현수막을 든 시위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였다. 안부를 묻자 그는 “이제부터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비현실적이지만 아직은 괜찮다”며 “어제 사람들이 거리에서 보여준 용기에 매우 감동받았다”고 답했다.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첫날인 7월 1일,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7월 1일은 홍콩 주권반환 기념일이기도 하다. 집회 주최 측은 16만5000명의 시민이 거리행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많은 ‘옐로 레스토랑’은 정치적인 포스터를 붙였다. 시위대를 지지하는 식당은 노란 리본을 내걸어 ‘옐로 레스토랑’이라 불린다.

이날까지만 해도 에이미는 “보안당국이 우리를 잡으러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마도 조슈아 웡이나 지미 라이 같은 정치적인 인물들을 먼저 쓰러뜨리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이미의 예상은 빗나갔다. 홍콩 보안당국은 7월 1일 집회에서 370여명을 체포했고 이중 10명에게 홍콩보안법을 적용했다.

7월 15일 지난 주말(11~12일) 동안 치러진 입법회 선거(총선) 범민주 진영 경선 투표에 61만명가량이 참여했다. 주최 측은 지난해 구의회 선거에서 얻은 표의 10% 수준인 17만명을 예상했지만 이를 크게 뛰어넘었다. 약 250곳의 투표소는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쩌면 오는 9월 입법회 선거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요즘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어디로, 어떻게 가족을 이주시킬 수 있는지, 돈을 해외계좌로 옮겨야 할지 말지, 만약 모두가 수감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휴대전화 보안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등을 이야기한다. 택시 운전사도 에이미에게 홍콩을 떠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탈홍콩’은 홍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장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4만2000여명이 홍콩을 떠났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도 이민이 잇따랐다. 영국은 7월 22일(현지시간) ‘영국해외시민권(British National Oversea·BNO)’ 소지자와 그 직계 가족들이 영국에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다. 홍콩인구 750만명 중에 BNO를 소지한 사람은 290만 정도다.

홍콩에 남겠다는 에이미의 생각은 변함없다. 그는 지난 6월 인터뷰 당시 “내게 홍콩을 떠나는 건 선택지가 아니다. 나는 차라리 이 도시와 같이 함락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요즘은 엄마를 대만으로 이주시키는 방법을 고민한다. 만에 하나 홍콩을 떠나야 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엄마를 대만에서 만나기 위해서다.

7월 24일 이날 에이미는 리척얀(李卓人·63) 홍콩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 (지련회) 주석을 인터뷰하기 위해 6·4 기념박물관으로 향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친 리척얀 주석은 홍콩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홍콩에서 모은 지원금 전달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1995년부터 2016년까지는 입법회 의원을 지냈다.

리척얀 주석은 “모두가 우리를 걱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을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쓰러뜨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미는 “한평생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 싸워온 인물과의 대화는 큰 위로가 된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거운 공기가 박물관을 짓누르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박물관 한쪽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박물관이 철거될 경우를 대비해 박물관의 모든 자료와 책, 사진과 각종 이미지를 스캔하기 위해서다. 6·4 기념박물관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자료들이 모여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지난 8월 6일 리척얀 주석은 조슈아 웡 등과 함께 미허가 집회 참가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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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라이 빈과일보 창업주가 8월 10일 홍콩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 /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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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홍콩의 코로나19 추세가 심상치 않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명을 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한 학생운동 그룹의 4명이 체포됐다. 페이스북에 독립운동조직 건립을 선포하고 해외에 홍콩의 독립을 선전한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는 이유다. 이들에게는 홍콩보안법 제20조(국가 분열을 조직·계획·참여하는 행위)와 제21조(국가 분열을 선동하거나 20조를 위반한 자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행위) 위반혐의가 적용됐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해당 학생운동 그룹이나 체포된 4명이 전혀 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그들이 체포되기 전에는 홍콩인의 90%는 그 그룹의 이름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17~21세로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조슈아 웡이나 베니 타이 홍콩대 법대 교수처럼 유명한 사람들에게 홍콩보안법이 먼저 적용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아함에 이어 자기 검열이 시작됐다. 평범한 사람도 보안당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정 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경찰 트럭 두 대가 에이미 옆을 지나갔다. ‘갑자기 경찰이 튀어나와 나를 제압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소셜미디어(SNS)에 쓴 글들이 떠올랐다. 독일 방송사와 일한다는 이유로 ‘외세와의 결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포는 무게를 가진다. 공포가 어깨와 마음을 짓눌렀다. 보안당국의 전략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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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거주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에이미가 촬영 장비를 들고 웃고 있다./ 에이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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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에이미는 친구들과 함께 ‘지난 이틀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목록을 작성했다. 총 11가지였다. 대표적인 것만 보자면 ▲홍콩 행정부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를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발표했고 ▲홍콩 법대 부교수이자 민주화 세력의 중심인 베니 타이 교수가 해임됐으며 ▲네이선 로와 웨인 찬 등 해외로 도피한 6명에 대한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한 달 전, 네이선 로를 비롯한 젊은 정치인·활동가들이 홍콩을 떠났을 때 에이미는 울었다. 오늘 그들이 수배됐다는 소식에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무기력할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공장들이 문을 닫아 하늘은 매우 맑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길에서 몇 번이나 토할 뻔했다. 내 기본권이 사라진 것처럼 공기도 사라진 것 같았다.”

홍콩 행정부는 입법회 선거 연기의 이유로 코로나19를 들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전국대표인민대회는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해 전체 현역 임기를 1년 연장하는 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현재 입법회 전체 70석 중 친중파가 43석으로 다수를 확보하고 있다. SNS에는 이제 어쩌면 영원히 투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8월 10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미 라이(黎智英·72) 빈과일보 창업주가 홍콩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다시 자버릴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에이미는 카메라를 들고 빈과일보 본사로 나갔다. 빈과일보는 중국 지도부의 비리와 권력투쟁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빈과일보 본사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빈과일보 기자들의 컴퓨터와 파일 등이 무더기로 압수되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200명이 넘는 경찰기동부대(PTU)가 빈과일보 사옥에 투입됐다. 빈과일보 기자들도 내부에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지미 라이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장면도 생방송됐다.

이날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사람은 지미 라이와 아그네스 차우(周庭·24) 등 총 10명이다. 여기에는 에이미의 친구도 포함됐다. 영국 ITV뉴스 프리랜서 기자다. 기자들 사이에서 “다음은 누가 될지 두렵다.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말이 오갔다. 이날 에이미의 일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일을 끝내고 나니 눌렸던 감정이 폭발했다.

“일은 깔끔하고 전문적으로 해야 하니까… 언론자유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나는 언론인으로서 그걸 지켜보고 보도해야 했다. 이건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끔찍한 사고로 죽어가고 있는데 보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감정적으로 소진됐고 심장이 너무 아프다.”

홍콩보안법 시행 40일, 더 이상 거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지 않는다.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수배와 기소가 이뤄졌다. 홍콩 입법회 선거가 1년 연기됐고, 언론사 사주가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생각한다. 막연했던 공포는 현실이 됐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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