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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대북 제안 없는 8·15경축사.."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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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 새로운 대북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 사태와 집중호우를 감안해 “방역 협력과 공유하천의 공동관리로 남북의 국민들이 평화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게 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공식 제안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판문점 선언, 남북 철도연결 등 기존 합의들을 주로 언급하며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실천하면서 ‘평화와 공동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는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남북협력을 강조하며 각종 대북 제안을 쏟아냈던 과거 8·15 경축사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8·15 경축사에서 “평화 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다”며 남북 경협을 강조했다. 또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한다”며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하나 된 '원 코리아(One Korea)'로 세계에 우뚝 서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8·15 경축사 때는 “남북 간 전면적인 경제 협력이 이뤄질 때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 “평화가 경제”라며 이른바 ‘(남북) 평화경제론’을 부각했다. 북한 등 동북아 6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번 8·15 경축사가 다소 밋밋해진 데에는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작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대화의 문을 걸어잠근 북한은 지난 6월 4일 탈북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은 ‘김여정 담화’를 시작으로 3주 동안 파상적인 대남 공세를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국 정부를 적(敵)으로 규정하고,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남북 관계를 파탄냈다.

광복절을 앞두고 정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의 이번 8·15 경축사에 최근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은 북한에 수해 복구 지원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13일)에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이 대놓고 걷어찬 ‘대북 수해 지원’ 카드를 8·15 경축사에 싣기 어려워진 셈이다.

작년 8·15 경축사 직후 북한이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며 탄도미사일 도발까지 일으킨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작년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튿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이 강조한 ‘남북 평화 경제’에 대해선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할(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 노릇”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을 향해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웃기는 사람” “북쪽 사냥 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은 조평통 담화 2시간 뒤인 오전 8시 1분과 16분 강원도 통천에서 동해상으로 북한판 에이태킴스 전술 지대지 탄도미사일 2발을 쏘기도 했다.

야권에선 “북한의 거센 반발을 부른 8·15 경축사가 청와대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하루 전날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한 ‘대북 수해 지원’ 카드를 무리하게 경축사에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말들이 나왔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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